<이재구칼럼> 대작화가와 국정농단
<이재구칼럼> 대작화가와 국정농단
  • 이재구
  • 승인 2016.12.12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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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구<변호사>

얼마전 가수 조영남이 대작 논란에 휩싸인 사건이 있었다. 무명작가에게 그림 한 점 당 10만 원에서 20만 원을 지불하고 받은 작품에 약간의 수정을 한 뒤 자신의 이름을 달아 수천만 원에 팔았는데, 이것이 사기죄에 해당되는지 논란이 되었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은 직접 작품을 만들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하고, 마르셀 뒤상은 공장에서 찍어낸 변기에 서명만 넣어서 자신의 작품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림 한 점에 수억 원씩 하는 데미안 허스트의 경우에도 자신이 직접 작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이 화가들의 작품은 독창적이고 참신한 작가의 작품성을 인정받아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 후기에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화가가 있었다. 겸재 정선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였다. 그의 그림은 당시 관료들 월급의 100개월치를 초과할 정도로 고가에 거래되었다. 정선은 37세가 될 때까지 이름 없는 화가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진경산수화의 화풍을 정립하게 되면서 인기가 치솟기 시작하였다. 59세에는 금강전도라는 역작을 남겼고, 80세가 넘어서 사망하였는데 당시 평균수명이 60세 미만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요즘 시대에 100세 이상을 산 것과 같다.

정선의 인기는 중국에서도 최고에 달하였고, 고관대직들이나 역관들 모두 정선의 그림을 구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정선은 밀려드는 주문량을 맞추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였다. 정선은 날로 늘어나는 그림 주문에 일일이 응하지 못할 정도가 되자, 아들과 제자 마성린으로 하여금 대신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다. 제자 마성린은 대필화가로서 많은 작업량에 시달리다 못해 그만두고 말았다.

워낙 작품이 많아 그가 사용했던 붓이 무덤을 이룰 정도였다고 하니, 속필로 그림을 그리거나 붓 두 자루를 잡고 쓸어내리듯이 그리는 방법 등 성의 없는 그림들이 많이 그려지는 건 당연했다. 정선은 폭주하는 주문에 맞춰 그림을 그리느라 먹고 잘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정선은 80세가 넘어서도 안경을 쓰고 등잔불 밑에서 계속해서 작업을 했을 정도 바쁘게 살았다. 정선은 명성과 부를 얻기는 했지만 말년까지 쉬지도 못하고 고생하였다. 그가 그린 그림들 가운데 성의없이 그린 졸작들은 정성을 쏟은 걸작에 비하여 수십 배의 가격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최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통령은 허수아비이고 뒤에서 실세로서 국정을 좌지우지한 최순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고스트 페인터, 대작 시비, 대리화가에 의한 그림을 국정농단 사태에 비유해 보자.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국가의 미래와 정책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대통령이 유능한 화가라면 똑똑하고 성실한 조수는 비서실이나 각 행정부처의 관료들이다. 대통령이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조수들이 대작으로 그린 것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과연 대통령는 가치있는 그림을 그릴 자질과 능력이 있는가? 그림을 그릴 자격이나 실력이 없는 최순실이 대신 작품의 초안을 그리고, 국가의 행정 관료들을 조수로 동원하여 자신들의 그림에 색칠을 하게 하는 등 일을 시켰다면 이는 형사처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안위와 장래에 대한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화가로서 실력도 없고 자격도 없는 최순실에게 그림의 초안을 잡도록 붓을 맡기고 비선실세가 되도록 방치한 책임은 누가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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