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원주에서의 20년(Twenty years in Wonju)
<문화칼럼>원주에서의 20년(Twenty years in Wonju)
  • 전영철
  • 승인 2017.02.13 05: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전영철 <상지영서대 교수>

시간은 흐르는 물같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원주로 내려오던 해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이란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는데 지금은 ‘원주에서의 20년’이란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1997년 3월 비로봉의 하얀 눈과 그때 당시 우산동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던 시절이었는데 원주에 내려 온지 엊그제 같다. 청년은 어느새 머리에 약간의 흰머리도 보이는 나이의 중년으로 접어들었다. 그러고 보면 원주도 꽤 많이 변했다. 두 개밖에 없었던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도 여섯 개로 늘고 올해 여름이면 강릉 가는 고속철도가 시운전을 하게 되고 광주원주간 고속도로로 인해 서울이 한 시간 안으로 들어왔다.

사실 원주에 처음 내려 내려왔을 때는 서울이 그리웠다. 지금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주직원들과 같이 말이다. 가족이 생기고 아이들이 생기고 서서히 원주에 적응이 되었다. 나의 고향보다 아이들의 고향이란 생각이 들었을 때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삶의 질 차원에서 부족한 것이 없는 아이들의 고향 원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주가 답답하고 지쳤을 땐 중국대륙횡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타기도 했고 여러 문화도시와 미개발된 지역을 다녀왔을 때는 원주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매우 진취적인 선조들이 살았던 땅 원주, 하지만 원주민들은 춘천이나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 콤플렉스에 군사도시라는 것을 얼마나 떼어놓고 싶어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원주는 엄청난 잠재력과 치악산과 백운산, 감악산 등 산악과 섬강, 남한강 등의 대자연 문막평야의 큰 뜰이 있는 말 그대로 대자연과 호흡하는 지역이다. 어느 날 딸아이에게 원주는 아빠 생각에 이런 엄청난 잠재력과 내면의 깊은 힘을 가진 지역이야. 언젠가 너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국가적인 개념이 약해질지 몰라도 이런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을 감사할거야 라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떡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서울 갔다 내려오며 남한강을 넘어서면 어느새 숨쉬기가 편해진다. 원주 살이 스무 해가 준 선물이다. 생각해보면 시골에선 훼손된 자연에게 상처받는데 도시에서는 사람에게 상처받는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참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그리고 많은 이웃들에게 많은 정과 사랑을 받은 것 같다. 이제는 원주가 얼마나 좋은 도시인지 원주의 숨은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스무 해 동안 관찰한 것을 원주의 라이프스타일로 풀어서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동안 잘 모르면서 섣부른 생각으로 강원도와 원주의 문화와 관광, 지역개발의 화두를 던진 글이 모아보니 꽤 된다. 어떻게 보면 시간의 지문이요, 원주에서의 흔적이다. 그래서 조촐하게 20년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부질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한 도시에서 고향에서 보다 올해 살았다는 것은 어느 한 소시민에게 큰 축복이다. 그리고 일종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작업이 될듯하다. 이를 통해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어 원주에서의 앞으로의 20년을 살아갈 것 같다.

나름 원주에서 살고 계시다면 지역과 나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셨으면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글도, 사진도, 스케치도, 나무를 심는 것도 그 어떤 방법도 의미 있는 작업이요 원주에서의 삶이 값질 것이다. 혁신도시와 기업도시에서 오늘도 서울을 오가며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소진되어 가는 삶을 살고 계시는 분들이 이글을 읽으신다면 원주로 이사하세요. 원주는 결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스무해 동안 원주살이를 한 선이주민이 보증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