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나의 원주 3景 이야기
<세상의 자막들>나의 원주 3景 이야기
  • 임영석
  • 승인 2017.05.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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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시인 문학평론가>

원주에는 천연기념물이 3곳에 지정이 되어 있다. 신림 성남의 성황림이 있고, 문막 반계리의 반계리 은행나무 그리고 흥업면 대안리 느티나무가 있다. 신림 성남의 성황림은 1962년, 반계리 은행나무는 1964년, 대안리 느티나무는 1982년에 각각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천연기념물은 말 그대로 자연 가운데 학술적, 자연사적, 지리학적으로 중요하거나 희귀 성, 고유성, 심미성을 간직한 자연을 국가에서 보호가 필요하다고 여겨 문화재청에서 법률로 정하여 보호하는 제도이다.

그만큼 천연기념물은 이 지구상에 보호되어 사람의 삶에 영속성을 더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원주지역에는 3곳의 나무에 대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지만, 석류굴, 황쏘가리, 제주마, 파초일엽, 삽살개, 크낙새 등등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전국에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나는 가끔 뜬금없이 이 천연기념물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물론 천연기념물 뿐 아니라 지역의 보호수나 문화재 등을 보면서 세월이라는 것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어떻게 자리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바라본다.

시를 쓰는 입장에서 천연기념물처럼 오래 기억되고 읽힐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詩라는 나무도 천년 세월을 버티어내지 못하면 누가 시를 썼는지 기억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좋은 시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고 많은 사람이 가슴속에 간직하고 후손에게 남겨줄 수 있는 시라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나는 1984년 겨울에 시조 「겨울 밤」 을 써서 『현대시조』지에 2회 추천을 받아 등단을 했다.

  • 나무가 서 있으면
  • 바람도 서 있겠다.
  •  
  • 부엉이 울음 속에 먹물을 풀어 놓고
  • 산이 말을 하면 鶴처럼 목을 뽑아
  • 열 두 폭 병풍을 그려 하늘 밑에 세우면,
  •  
  • 비로소 바람과 나무가
  • 산으로만 가더라.

어쩌면 이 시조 속의 풍경처럼 나는 원주에 와서 詩의 스승을 셋 두었다고 말한다. 반계리 은행나무와 치악산, 그리고 섬강이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계절마다 각기 다른 詩를 내 눈앞에 펼쳐 준다. 그리고 치악산은 치악산을 오를 때마다 내 발걸음의 수와 비례되는 세월의 힘을 가늠하게 해 준다. 섬강은 더 낮게 그리고 더 멀리 평등의 삶을 향해 살아가라는 말을 해 준다. 사람이 살며 각자 자신만의 삶의 스승을 섬기고 살아갈 것이다. “나무가 서 있으면 바람도 서 있겠다”라는 마음을 반계리 은행나무가 끝없이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열 두 폭 병풍을 그려 하늘 밑에 세우면“이란 풍경은 치악산 그 자체가 열두 폭 병풍이다. 그래서 나는 치악산 밑에서 자리 잡고 20년 넘게 살아가고 있다. 또 ”비로소 바람과 나무가 산으로만 가더라“라는 말처럼 섬강은 내 영혼이 흘러가서 멈추는 곳을 알려주고 있다.

나의 원주 3景에는 허공과 손잡고, 세월과 손잡고, 영혼과 손잡는 법을 각각 나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도 스승님께 감사하다는 선물을 드린 적이 없다. 아니 선물을 받을 줄도 모르는 스승님들이다. 반계리 은행나무 스승은 해마다 은행잎으로 허공을 수놓아 나의 마음을 깨우쳐 주시고, 치악산 스승님은 괴암 괴석과 나무들로 가파른 내 삶의 허물을 덮어주며 올곧게 살아가라 하신다. 또 섬강 스승님은 내 삶의 영혼이 자유로이 흘러가서 더 큰 희망을 품고 살아가라고 일러 주신다. 이보다 더 큰 스승이 어디에 있을까 한다.

자연의 경치가 아름답다 하여 모두 스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승은 섬기고 그 섬김 속에서 배움을 익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3景은 원주의 다른 8景에 버금간다고 말하고 싶다. 내 흉함을 솔직하게 흉하다고 말해주며 스스로 흉함을 통해 가르치는 스승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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