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방한담> 훈장의 꿈을 접다
<차방한담> 훈장의 꿈을 접다
  • 금태동
  • 승인 2017.06.2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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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태동 <시인>

낯선 고장 원주시 부론면 외딴집 농가로 귀촌한지 만 삼년이 지났다. 여러 해 동안 비어있던 오래된 집 마당에 허리춤까지 자라난 잡초를 제거하고 황토방을 손질하여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면서 반세기를 거스르는 어린시절 고향의 정취에 흠뻑 취하기도 하였다.

정년의 도시인이 산골마을에서 조용한 여생을 꿈꾸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프리랜서로 살아온 나는 남보다 조금 일찍 이 꿈을 실행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었고, 인근의 어린 아이를 데려다가 천자문이라도 가르치며 유유자적 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평균연령이 일흔을 넘은 정산리 마을에 가르칠 어린 학동은 없었다. 그렇다고 도시의 아이들을 데려다 숙박을 시키며 가르칠 형편도 환경도 아니었다. “훈장을 하려면 지리산 청학동을 가야지...”등의 비아냥만 흘려들었다.

지난달에 우여곡절을 겪으며 단계동에 번듯한 사무실을 얻어 다도사랑방을 개설하면서 훈장의 꿈이 되살아났다. 나름의 격(格)을 갖추고자 일지병풍(一枝屛風)을 두르고 한켠에 고풍어린 책장을 마련하여 고서를 진열하고 문방사우(文房四友)를 가지런하게 준비하였다. 내 마음속 서당은 단원의 그림 속 서당풍경을 그대로 닮았다. 어쩌면 단원의 그림속이 아니라 아련한 어린시절 이웃 할아버지의 담배냄새 가득했던 사랑에 꿇어앉아 읊었던 추억의 그리움일지도 모르겠다.

어찌했든 나는 어린 학동들 몇몇은 모아 사제 간에 옛날 복식을 하고 천자문이며 동몽선습 학어집 등을 교재로 하여 풍월을 읊게 하고 전통의 예절과 풍습, 가치를 가르치는 구태를 꿈꾸며 행복하였다.  시 교육청에 옛날식 서당을 운영하고 싶은데 등록은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문의했다. 가정집이 아닌 근린시설에서는 과외가 허용되지 않고, 교습소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답이다.허가 요건을 물었다.

남녀 화장실이 구분되어 있어야 한다는 부분에서 머리가 복잡해 졌다. 이미 화장실은 공사가 끝났고 소변기 하나라도 설치할 공간을 따로 내기에는 어려운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냈다. 탕비실로 설계된 공간으로 들어가 화장실이 있다.좁지만 탕비실 안쪽에 경량칸막이를 추가로 설치하여 문을 내고 변기를 설치한 후에 아크릴로 만들어 파는 앙증맞은 남녀 화장실 표지판을 달면 되겠다는 생각의 정리를 하고 다시 전화를 했다.“문을 열고 들어가서 남녀가 구분되는 방식은 안됩니다. 출입구 자체가 애초에 분리되어 있어야 합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만 친절하게도 같은 건물 내에 아래 위층으로 구분할 수 있어도 된다고 했지만 어쩐지 법을 비트는 모양새 같아 마뜩지 않았다. ‘이런 서당을 운영하려하는데 아이를 보내주시겠는가?’ 하고 인근 초등학교 소수학부모 그룹에 물었다.구미는 많이 당기지만 학교와 보습학원, 피아노학원, 태권도 학원을 그물망처럼 연계하여 학원차량이 운행되는데 연계가 안되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다.시대의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차나 마시며 풍월이나 읊고 싶은 한량이 꾸던 훈장의 꿈은 이제 멀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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