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방한담> 아호(雅號) 고(考)
<차방한담> 아호(雅號) 고(考)
  • 금태동
  • 승인 2017.07.23 06: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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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태동<시인>

본관은 나주, 아명은 귀농(歸農), 자는 미용(美庸), 용보(頌甫), 호는 사암(俟菴) · 탁옹(籜翁) · 태수(苔叟) · 자하도인(紫霞道人) · 철마산인(鐵馬山人) · 다산(茶山),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모든 문학에 두루 능했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프로필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선생과 더불어 다수의 아호를 사용한 역사인물로 유명하다.

요즘의 성인식에 해당하는 관례(冠禮) 때 지어준 이름을 자(字)라 하고 문인이나 화가 학자들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 별명을 지어 사용하던 것을 아호(雅號) 이를 줄여 호(號)라 한다. 또한 생전에 공이 많았던 신하에게 왕이 내리는 시호(諡號)가 있으니 이순신의 '충무(忠武公)'가 그러하다. 자나 호의 사용은 본명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상대방의 품격을 존중하여 예우하는 것은 물론 친근감을 더하는 망년지교(忘年之交)의 아름다운 관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는 스승이나 명망이 있는 분이 지어주기도 하고 스스로 작호하기도 하는데 소처이호(所處以號), 소지이호(所志以號), 소우이호(所遇以號), 소축이호(所蓄以號)의 네 가지 원칙에 기준하는 것이 보편적이라 하겠다. 지명을 인용하거나 지향하는 의지를 살피거나 처지를 빗대거나 환경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아호는 일종의 무형문화유산이다. 역사인물이 주로 쓰던 아호를 만들어 쓰려하니 어린 백성의 마음이 버겁다. 아호를 만들어도 스스로 홍보하기도 면구하고 누가 잘 불러 주지도 않으니 또한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수 년 전에 삼헌(三軒)이란 아호를 내게 준 도헌(陶軒) 구능회(具陵會) 선생께서는 KBS 재임시기부터 아호보급운동을 해 온 분이다. 선생은 “나이 사십이 넘어 서로 간에 이름을 부르는 것은 어색함이 있고, 선친께서 지은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 또한 예에 어긋날 수 있으니 적절한 아호를 만들어 불러 주는 것은 자부심도 가질 수 있고 듣기에도 아름다울 것이다”는 취지의 운동이라 했다.

이에 동조하여 나 또한 소수의 분들께 아호를 만들어 드렸다. 유명무실하게 장식이 된 경우도 있고, 심심치 않게 이용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자연인 한 사람의 이미지에 걸맞는 참신한 작호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실감하였다. 스스로 작호를 하는 경우가 아니라 명망 있는 분이 지어주는 것이 아호라 전제한다면 나도 명망자 대열에 서야 하는 이치가 생기는데 이 또한 면구스럽기만 하다.

원주라는 고장에 대한 이해가 크게 없이 이주해 와 살면서 지역의 문화생태계가 뿌리 깊었고, 그 수준이 매우 높다는 사실에 놀랐다. 찻자리에서 만난 매우 많은 분들이 아호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차 한 잔을 놓고 시 한 수를 읊조리던 선비문화가 우리의 전통 가치로 전승되고 계승되는 아름다운 꿈을 꾸며 오랜 벗을 대하듯 아호 하나를 명함에 새겨도 좋지 아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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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익히면 2017-08-25 09:32:08
정약용선생님이 정말 많은 이름(?)을 가지고 계셨군요
다산이라는 호만 알고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