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解禁詩人에 대한 고찰
<세상의 자막들>解禁詩人에 대한 고찰
  • 임영석
  • 승인 2017.07.31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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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석<시인,문학평론가>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치하에서 해방이 되고 남과 북으로 분단이 된 이후 땅만 갈라진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걸쳐 두 조각이 나고 말았다. 자의든 타의든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이 월북, 재북을 하였다. 정부는 이념 문제에 관하여 순문학적인 차원에서 해방 전의 문학인에 대하여 학술연구와 상업 출판을 허용하는 해금 조치를 1988년까지 4번에 걸쳐 취하였다.

해금 시인 99선을 펴낸 김윤식(문학평론가)의 자료에 의하면 1976년 3.13조치로 월북 재북 작가를 문학사적 차원에서 논의를 허용했고, 1987년 10.19조치로 상업 출판을 허용했고, 1988년 3.13조치로 정지용, 김기림 두 문인이 전면 해금이 되었고, 1988년 7.19조치로 한설야, 이기영 , 조영출, 백인준, 홍명희 등 5명을 뺀 나머지 문인들의 작품에 대하여 해금 조치를 취하였다고 했다.

1988년 이전까지는 많은 시인들의 작품들이 공식적으로 그들의 작품을 읽을 수 없었다. 해방 전 소외 우리가 말하는 카프계 및 동반자파라는 문학 장르를 형성해 작품 활동을 한 문인들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김해강, 임화, 김창술, 권환, 유적구, 손풍산, 김병호, 박세영, 양우정 등 9명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남북으로 분단이 된 이후 재북, 월북을 하여 북에서 문학가동맹에 가담한 문학인에 대하여 정부는 그들의 작품에 대하여 모든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가 잘 아는 시 「향수」의 시 정지용 시인의 작품도 정지용이란 이름을 쓸 수 없이 〈정 ○ 용 〉이란 식으로 표기되어 작품을 읽어야 했던 기억이 있다. 역사에 있어 무엇이 옳고 그름의 판단은 반듯이 해야 한다. 때문에 정부도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그간 북에서 활동한 작가들에 대한 작품이 출판되어 읽을 수 있도록 허용하였던 것이다.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흙에서 자란 내 마음 /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 풀섶 이슬에 함초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 사철 발 벗은 안해가 /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하늘에는 성근 별 / 알 수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 詩 「향수」 전문

사람이 사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문제들은 참으로 복잡하여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참으로 어렵고 힘들다. 어떤 선을 그어 놓고 바라보면 그 선의 기준이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도 그 선을 제거하는 게 쉽지가 않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감정이란 선은 긋기는 쉬어도 지우기는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1988년까지 해금된 시인은 다음과 같다. 〈임화, 권환, 김창술, 안용만, 박세영, 박아지, 조운, 백석, 박팔양, 조벽암, 임학수, 이찬, 이조규, 이흡, 여상현, 이용악, 오장환, 조남령, 설정식, 정지용, 김기림〉 등이다. 백석, 이용악, 정지용, 오장환, 김기림 등의 시선집 등이 모두 1987년에서 1988년에 출판이 허용되어 우리가 그들의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분단 이후 1988년 해금 조치가 취하기 그 이전까지는 한국현대시사에서 이들의 이름이 거론조차 되지 않았고 작품도 읽을 수도 없었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얼마만큼 남과 북의 모든 부분에서 금기시했던 부분들을 해금시키고 상호 함께 공감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1945년 해방 전의 문학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1988년에 와서야 해금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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