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방한담>여(呂) 씨
<차방한담>여(呂) 씨
  • 금태동
  • 승인 2017.09.11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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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태동<시인>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미소가 선한 느낌을 주는 여 씨는 아내의 친구 남편이다. 내 아내와 여 씨의 아내가 이십여 년 동안 자매와 같은 돈독한 관계로 지내 온 관계로 나 또한 그의 가정에 대한 정서를 나름 이해하고 있는 편이었다. 오랜 인연이고 이웃이다 보니 아내의 친구 집을 방문 한 적이 몇 번 있다. 자연스럽게 여 씨를 조우하였다.

자동차 타이어 유통업을 하는 분이었고, 수 년 전에 그 분을 통하여 내 차의 타이어를 아주 저렴하게 교체한 적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여 씨와 내가 마주하여 친분을 나눈 기억이 별로 없다. 이십여 년 긴 세월 동안 그저 아내 친구의 남편이라는 관계 안에 머무른 분이다. 그럼에도 여 씨는 가끔 아내의 입을 통해 ‘누구 아빠’ 식으로 기억을 떠 올릴 때면 처음 본 그 분의 큰 키와 구레나룻이 선명한 호남형 인상이 세밀하게 떠올랐다.

아내와 아내의 친구가 처음 이웃하여 알던 이십여 년 전에 여 씨는 시장인근에 삼층 건물을 물려받은 독자라 하였고, 생활 형편이 나쁘지 않은 가정이었던 것으로 들었다. 이 후에 사업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를 간간이 듣기도 하였고, 세를 얻어 이사를 하였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 두고 일가를 이루어서 건강하고 예쁘게 잘 키웠으니 여 씨는 선한 보통의 가장이었다. 아내와 아내의 친구의 우정에 대하여 오불관이었지만 마음속으로 오랫동안 잘 지내기를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부족하여 받는 스트레스의 상당부분을 아내는 그녀와 함께 하며 푸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늦은 시각에도 귀가하지 않는 아내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칠 할은 “현지(그녀 딸 이름)랑 같이 있는데 곧 갈 것...”이었다. 나는 숱하게 아내에게 화를 내곤 했다. “도대체 그 여자들(밤늦은 시각 매번 같이 호프집에서 수다를 떠는)은 남편도 없는가?”라는 말을 했고, 그럴 때면 여 씨가 떠오르기도 했다. 다시 생각하여도 긴 세월동안 여 씨와 마주앉아 술 한 잔을 나눈 기억이 없다. 아마도 여 씨는 술을 즐겨하지 않는 분으로 여겨진다.

거기에다 나 또한 술보다는 차를 즐겨하는 경우라 술자리를 즐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서로간에 공통된 관심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일상이 서로 다른 일상을 마주하고 있었던 듯싶다. 그럼에도 이웃한 오랜 인연 치고는 지나치게 소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언젠가 아내에게 “현지 아빠는 뭐하신대?” 하고 물어 본 적이 있다. 그분은 혼자 계실 때에 컴퓨터 게임만 한다고 했다. 혹시 여 씨가 그의 아내에게 내가 궁금해서 물어 본 적이 있다면 그의 아내는 이렇게 대답하였을 것이다. “그 아저씨는 컴퓨터로 바둑만 둔데요.” 문을 닫아걸고 밤늦은 시각에 컴퓨터 게임을 하는 중년 남자의 고독을 나는 안다.

첨단의 지식도 쓸 만 한 기술도 정보도 인맥도 없이 오늘을 사는 가장의 외로움을 나는 안다. 술을 마시며 형제와 친구와 이웃이 어울리며 즐거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부러운지 나는 잘 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조차 가족이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손뼉을 치며 가장을 섬기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운 일인지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잘 알고도 남는다.

내 아내와 내 아내의 친구에게 있어 공통된 불행이 있는 듯하다. 집을 나서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남편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이나 자랑거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며칠 전 아침나절 잠결에 들려오는 아내의 통화가 불길한 예감을 전했다. “누구야? 왜 그래??” 채근하듯이 물었다. “지난밤에 현지 아빠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셨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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