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딸 키우는 아빠의 심정
<비로봉에서>딸 키우는 아빠의 심정
  • 편집국
  • 승인 2017.12.18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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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원주 A아동양육시설에서 발생한 사무국장의 여고생 폭행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TV나 신문을 통해 아동폭력 사건을 접한 시민들은 적나라한 폭력사건이 공개되자 아연실색했다. 뉴스전문채널, 종합편성채널에서도 이 소식을 전국에 알렸다. 독자들은 “후진국형 폭력”, “죄의 댓가를 치러야 한다”며 개탄스런 반응 일색이었다. 필자는 제보를 접하고 눈을 의심했다. 그래서 동영상을 5번 정도 리플레이(replay)해 봤다. 온갖 욕설이 난무하고, 주먹질도 모자라 앉아서 흐느끼는 피해자를 향해 발길질 까지, 이를 말리는 직원·원생들, 그리고 제발 그만하라는 한 교사의 비는 모습...보는 내내 눈가가 촉촉해 졌다. 

“혹시 내가 너무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후배기자들에 반응을 물었다. 하나같이 “세상에 이럴 수는 없다”고 했다. 한 학부모는 “꼭 보도해서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아동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이라며 “그동안 지역사회가 이런 시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면 무조건 온정주의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라며 “제2,제3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필자가 동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보이게 된 것은 피해 여고생의 모습에서 같은 또래인 딸의 모습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피해아동은 당시 잠못 차림이었다. 그리고 머리스타일은 긴 단발머리, 마르고 보통체격이었다. 영락없는 딸의 모습이었다. 수면잠옷의 기억은 아직도 눈앞에 아른아른하다. 필자의 딸은 선물받은 수면잠못을 입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며 맵시를 선보였던 기억이 있다. 순간 피해여고생은 A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원생이 아니라 필자의 딸이란 생각이 들었다. 피해 여고생은 본지 취재사실이 알려지자,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함께 생활하고 있는 친구들이 피해를 당할까 걱정된다”며 어른스런 반응까지 보였다. “아픈 곳은 없니”, “지금 학교 잘 다니니”, “앞으로 어려운 일 있으면 아저씨한테 전화해라”,“아저씨도 너같은 딸이 있단다”라는 말 밖에 필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현실에 가슴이 시렸다. 

추가취재결과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A아동양육시설은 지난 2013년, 2016년 보건복지부의 사회복지시설 평가에서 평균등급 A평가를 받았다는 사실. 특히 6개 평가영역 가운데 ‘아동의 권리’에서는 A등급을 받았다. “이런 평가를 받는 곳에서 막무가내식 폭력사건이 발생하다니...” 당국은 평가를 제대로 했겠나 자문(自問)해 봤다. 원주시는 이 시설에 지난 한해 17억원을 지원했다. 이곳에는 특히 전국 봉사단체, 독지가들의 후원금품 접수가 이어지는 곳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후원금품 답지가 끊기면 안 되는데...”라는 걱정과 함께 이 사실을 후원자들이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다. 

이 사건을 대하는 시설과 당국의 태도에 필자는 크게 실망했다. 그들은 폭력사건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이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우기 보다는 “가해자가 형사처벌받아 행정처분(영업정지)을 받게 되면 아이들이 다른 시설에 분산 입소해야 하는데...”, “가해자는 당분간 이런 시설에 취업할수 없는데...”라며 사건의 후폭풍을 먼저 걱정하는 것처럼 비춰진 것은 유감천만이다. 특히 “아이가 준법의식이 떨어진다”,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말한 대목에서는 상황인식이 한참 뒤떨어진 현실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피해여고생이 그렇게 문제아였다면 그것은 바로 그를 낳아준 부모와 시설관계자, 그리고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가정이 아이들에게 안식처이듯 부모 이혼 등의 이유로 버림받아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아동양육시설은 안식처이자 유일한 버팀목이다. 시설 종사자들은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지쳤을 때 어루만져주고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곳이다. 아동 학대를 경험한 사람의 청소년과 성인기 범죄·폭력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똑똑히 목도(目睹)하고 있다. 묵직한 돌덩이를 매단 듯 마음이 무거워지는 세밑이다. 길거리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캐롤송이 어색하게 다가와 귀전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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