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크리스마스를 추억하며
<세상의 자막들>크리스마스를 추억하며
  • 임영석
  • 승인 2017.12.26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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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석<시인·문화평론가>

내 나이 20대 초반부터 40대 중반까지 종교가 없어도 크리스마스 날이 가까워지면 카드나 연하장을 사서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보냈었다. 그러나 컴퓨터가 일상화되는 시점부터는 이메일로 그 인사를 대신하면서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을 보내지 않아왔다. 모두가 편리성만 추구하다 보니 나 스스로가 정성과 마음을 버리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1980년대는 음악다방과 고고장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을 했다. 음악다방은 주로 팝송과 가요를 들을 수 있었고, 고전음악다방에 가면 고전 음악과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1990년대까지 그 유행이 이어졌고, 크리스마스 날이면 통행금지가 풀려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에는 교회나 성당의 십자가나 종탑만큼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았다. 교회나 성당의 크리스마스 추리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지금에야 곳곳이 가로등 불빛이 빛나고 있지만, 1980년대에는 도시의 번화가에 가야만 환한 불빛이 있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연말이 되어야만 통행금지가 해제된 거리에서 보냈던 기억이다. 아마 베이비붐 세대 이전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당시에는 시집 한 두 권 손에 들고 시를 이야기 하며 낭만의 거리를 활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김소월, 윤동주,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등 무수한 시인들의 시들을 외우며 편지글속에 그 시들을 옮겨 적어 마음을 전했던 기억이 든다.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과 /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 '별 헤는 밤' 부분

민주화를 외치며 많은 사람들이 성당과 사찰 등으로 몸을 숨기며 지냈기 때문에 성당이나 교회 사찰은 자유를 열망하던 사람들의 눈에는 늘 요새로 통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교회나 성당의 십자가가 더 빛나 보였고, 성당의 종소리가 더 맑게 들리었던 시대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은 소음공해가 된다 하여 도시에서는 그 종소리가 멈춰 있고, 믿음의 크기보다 건물의 크기만 커진 느낌 때문인지 화려한 불빛이 밝아 보이지가 않다.

지금은 영화에서나 보는 장면이 되었지만 양복점, 구둣방, 연탄가게, 쌀가게, 문방구, 양잠 점, 점방, 선술집 등에서 불빛이 새어 나와 어두운 골목을 비추었었다. 지금은 식당, 레스토랑, 편의점, 백화점, 마트 등이 주변에 널려 있지만, 당시는 연말이 되어야만 가족들이 외식 한 번 하기도 급급했던 때였다.

세상이 격세지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불과 40여 년 세월이 세상의 풍경과 풍습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우리 사회가 도시화되고 산업화되고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졌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나 누가 100까지 모실 것이며, 100세까지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근심과 걱정이 늘어난 시대가 되고 말았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는 우리 스스로 과거를 다 버렸다. 내가 버린 과거가 침묵하고 있다. 알고 보면 그 침묵이 나를 버리는 일이었다. 연하장에 소중하게 담았던 사랑이 알고 보면 나를 견디게 해준 뿌리었다. 그래서 이규리 시인의 시 '알고 보면'을 다시 읽어 본다

사랑하는 사람이 침묵할 때 /그 때의 침묵은 소음이다 /그 침묵이 무관심이라 느껴지면 /더 괴로운 소음이 된다 /집을 통째 흔드는 굴삭기가 내 몸에도 있다 /침묵이자 소음인 당신, /소음 속에 오래 있으면 /소음도 침묵이란 걸 알게 된다 /소음은 투덜대며 지나가고 /침묵은 불안하게 스며든다 /사랑에게 침묵하지 마라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건너편에서 보면 모든 나무들이 풍경인 걸 /나무의 이름 때문에 다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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