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오늘 본문 중 영국과 유럽 대륙 작곡가들의 악풍(樂風)을 비교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전문 용어의 복습이 필요할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클래식 이야기 9편 참조)
1) 호모포니(homophony)
‘homo’라는 말은 ‘동일한’이라는 뜻이므로, 4성부 찬송가처럼 각 성부의 리듬이 비슷한 형태의 음악을 말한다. 주로 화성법적 음악을 말할 때 이 용어를 쓴다.
2) 폴리포니(polyphony)
‘poly’라는 말은 ‘수가 많다’는 뜻이므로, 음정과 리듬이 다른 여러개의 선율이 동시에 울리는 형태를 말한다. 주로 대위법적 음악을 지칭할 때 이 용어를 쓴다.
영국은 섬나라인 관계로 유럽 대륙과는 정서가 조금 달랐다.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 유럽 본토가 폴리포닉한 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 영국은 화성적인 음악을 향유하고 있었다. 유럽 본토 작곡가들은 ‘리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음정에 대한 관심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 작곡가들은 수직적인 울림을 중시했기 때문에 3도나 6도 등의 불완전 협화음정이 주축이 된 호모포닉한 음악을 선호하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은 현시대 우리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반면, 당시 영국의 음악은 오늘날 우리들의 음악과 느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포오부르동(fauxbourdon)을 들 수 있겠는데, 포오부르동이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거짓 저음(bass)’이라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맨 윗성부(上聲部)에 멜로디를 써놓고 그 아랫성부에 화음을 끼워 넣는 형태를 말하는데, 보통은 3화음의 첫째 자리바꿈 형태가 된다.
여기서 첫째 자리바꿈이란 것은, 만약 ‘도,미,솔’이라는 화음이 있다면 베이스에 근음(root)인 ‘도’가 아닌 ‘미(3음)’가 오게 하는 성부배치를 말한다. 만일 ‘솔,시,레’ 화음이라면 원래의 근음(root)인 ‘솔’이 위로 올라가고, ‘시’가 베이스에 배치되는 것이고, 같은 원리로 ‘파,라,도’ 화음이라면 ‘라’음이 베이스가 되는 것이다.
영국 작곡가들의 이러한 3화음 체계의 화성 기법은 유럽 대륙으로 전파되어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물론 당시 유럽 본토에 비슷한 화성 기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그게 그렇게 신박한 것인지는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영국 음악이 유럽 본토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지만, 우리는 영국의 클래식 작곡가들에 대해서는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작곡가들에 비해 평가가 박한 편이다. 클래식 음악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곡가로는 헨리 퍼셀, 에드워드 엘가, 본 윌리엄스, 구스타프 홀스트 등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들의 작품을 들어 보면 유럽 본토 작곡가들의 음악 못지 않게 때로는 장대하고, 때로는 화려하며, 때로는 섬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 들으실 곡은 영국의 작곡가 구스타프 홀스트의 ‘행성(planet)’ 중 ‘목성(Jupiter)’이라는 곡이다. 홀스트는 본 윌리엄스와 함께 근대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원래 트롬본 연주자였던 그는 30세 이후 음악교사와 음악 감독 등을 역임하면서 짬짬이 곡을 썼는데, 그의 작품에는 바그너나 R.시트라우스 등 독일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화성 기법과 라벨의 섬세한 관현악법, 그리고 영국 민요의 멜로디가 튼튼한 기반이 되었다. 이와 같이 영국과 유럽 본토의 영향을 두루 받은 그의 작품에는 힌두교와 신비주의도 큰 영향을 끼쳤다.
홀스트의 관현악곡 ‘행성’ 역시 신비주의의 영향을 많이 반영한 작품으로서 점성술적인 관심에서 화성, 금성, 수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등 태양계의 일곱개 행성을 소제목으로 삼고 있다. 이 곡의 초연은 1918년에 런던에서 이루어졌고, 첫곡인 화성의 스케치가 1914년에 시작되었다고 하니 4년이란 세월에 걸쳐 작곡된 셈이다. ‘목성’은 한 때 공중파 TV 뉴스의 시그널 음악으로도 나와서 중년 이상의 세대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음악이기도 하며, 또한 천체나 우주를 다룬 장대한 영화음악의 레퍼런스로도 많은 각광을 받기도 한다.
https://youtu.be/T0Fx24Xzc3U (클릭)
유투브 검색어 : 홀스트 목성 (맨 위에서 두 번째 동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