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정의를 수호하는자 누구인가?
<비로봉에서>정의를 수호하는자 누구인가?
  • 편집국
  • 승인 2018.01.02 0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지금으로부터 20년전의 일이다. 일간지 사건기자로 뛰던 시절이었다. 사무실에 가장 먼저 출근하던 때였다. 어느날 전화벨 소리가 사무실의 적막을 깼다. 필자를 찾는 전화였다. “전데요”라는 말에 그는 다짜고짜 “너 모가지 몇 개냐”는 험악한 말을 내밷었다. 이 날자 사회면에는 ‘경찰, 사건축소 의혹’이란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이해관계인으로 보이는 이 남자는 이날 분풀이를 했던 것. 더 이상의 통화는 무의미하다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네, 저 모가지 하나거든요. 저희 집은 00동 00아파트 0동0호입니다. 밤 8시쯤 퇴근하니 그 시간에 맞춰 오시면 저를 볼수 있습니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필자는 다음날짜 지면에 협박받은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다. 당시 출입처에서는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느라 애를 먹었다. 사실 겁이 나기도 했지만, 필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수습기자 시설 선배들로부터 담력(?)을 키우는 훈련을 철저히 받은 탓이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신출내기 기자에게 경찰관, 검사, 고위공직자는 무서운 존재였다. 선배들은 후배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며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몸소 가르쳤다.

요즘 지역사회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정의를 수호하는 언론과 기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역설하면 그만큼 정의를 수호하는 언론·기자를 찾기 힘들다는 얘기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특정 언론을 빚대 ‘응원저널리즘의 대명사’, ‘권력자에게는 이 눈치 저눈치 보면서 약자만 조진다’, ‘000를 위해 용비어천가만 부른다’는 등 얼굴이 화끈 거릴 정도다. 필자에게 직접 그런 비판을 가하는 인사도 있었고, 지인들을 통해 이런 지적을 간간히 전해 듣게 된다. 이런 비판에 일견 수긍이 간다. 산보하듯 제목만 흩어보는 신문을 빗대 ‘5분 신문’이란 비아냥이 나오고, 논리적 구성력이 취약한 기사에 대해서는 사감(私感)이 반영된 기사라고 하고, 심지어 ‘000의 팬클럽’, ‘권력의 망보기꾼’이라는 등 언론을 향한 독설의 수위는 묵직하게 다가와 폐부(肺腑)를 파고든다. 도가 지나치게 종교집단의 눈치를 보는 언론의 모습에선 나도 모르게 혀를 차기도 했다. 전후좌우 모두 고려하면 어떻게 신문을 제작할수 있겠나. 모두 배려하다보면 지면의 짜임새는 사라지고 누더기가 된다. 뉴스가치에 의한 기사배열은 기대하기 힘들다.

언론의 기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보면 권력자, 자본에 대한 감시기능이 하나요. 그리고 사실과 의혹이 뒤죽파죽 된 사회에서 해당 의제를 논리정연하게 정리해서 시민의 판단을 돕는 것이다. 여기에 사사로운 인연이 개입되거나 직접 관련 당사자와 ‘누이좋고 매부 좋은 식’의 카르텔 구조는 우리도 모르게 지역사회를 서서히 병들게 한다. 혹자는 필자를 향해 ‘아주 독한 놈’, ‘냉혈한’(冷血漢)이란 말까지 쏟아낸다. 그러면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제 몸에는 뜨거운 피 뿐만 아니라 차가운 피도 흐른다’라고. 얼마전엔 친척 어르신이 기사를 빼달라고 부탁했으나 정중히 거절하기도 했다. ‘인정사정 없는 놈’이란 표현이 맞는가 보다. 하지만 쿨할 땐 누구못지 않게 쿨하다.

정의의 수호자인 언론,기자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 눈치, 저 눈치 살피게 되면 진실추구는 먼나라 얘기가 된다. 소신에 따라 객관적인 판단을 하고 지면에 반영해 독자들의 평가를 받으면 된다. 그동안 “저러다 망하지...”, “1년도 못 버틸거야”라는 망하길 바라는 주문같은 이야기는 필자의 가슴을 후벼팠다. 그럴수록 원주신문은 정직한 목격자란 초심을 되새기며 더욱 분발했다.

원주신문은 올해로 창간 4주년을 맞는다.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올곧게 달려왔다고 자부한다. 지금까지 그래 왔지만, 앞으로도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신뢰를 저버리는 논조는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작지만 강한 신문을 위해, 불의를 응징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올해는 ‘황금 개의 해’, 무술년이다. 건강한 지역사회,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위해 원주신문은 감시견(監視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