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죄(罪)
<세상의 자막들>죄(罪)
  • 임영석
  • 승인 2018.03.1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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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석<시인>

세상을 살다 보면 우(愚)를 범(犯) 하지 않을 수 없다. 농사꾼은 밭의 풀을 뽑아야 하고, 대장장이는 쇠를 달구어 망치로 달구어진 쇠를 두드려야 하고. 악공은 소가죽과 나무를 잘라 악기를 만들고, 말을 타려면 채찍을 때려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넓은 길을 내려면 작은 생명들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이 모두가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작던 크던 죄를 짓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곳이 사람 세상이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팔아 돈을 벌었다. 하지만 노벨이 개발한 다이너마이트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는 돈을 벌지만 누군가는 희생이 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위대하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무엇인가를 해쳤다는 결과론을 갖고 있다. 전장의 영웅들은 모두 적을 죽여야 승리한다. 시대의 위인들은 제도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관습을 허물어야 했을 것이다.

죄란 무엇인가? 생각을 해 본다. 나를 위해 다른 무엇인가를 해치는 일이 죄라 생각한다. 그러니 밥을 먹는 일부터 옷을 입는 일, 행동하는 모두가 다른 무엇인가의 피해를 주니, 그 행동들이 죄라 생각한다. 그러니 죄로부터 벗어날 사람이 세상에는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생활에서 발생되는 것들은 죄라 여기지 않는다.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삶의 수단들에 대한 회의를 갖고 살아간다. 그 수단들이 정당화되면 될수록 세상은 혼돈스럽고 법의 테두리에 사람이 매몰되어 살아가야 한다. 세상의 법이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이권의 분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경계할 대상들이 많아졌다는 증거가 법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사람의 삶에서 양심이 가장 먼저 적용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 도덕이고 법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나는 詩를 쓰며 詩도 양심의 法이라 생각한다. 글을 쓰기 위해 버린 파지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시를 쓰기 위해 내가 숨 쉬고 내뱉는 내 행동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걱정과 피해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의 깊이가 깊은 만큼 물의 빛이 푸르다’는 이 말에도 죄가 숨어 있다. 마음의 깊이를 깊게 파내기 위해 내 주위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 글을 쓰지만, 글과 무관한 내 가족들은 생계에 도움도 되지 않는 나의 글쓰기에 맘고생이 많을 것이다. 나를 알고 지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그러한 마음의 죄를 짓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 껍질이 단단하면 / 그 속이 연한 거고 // 껍질이 연하다면 / 그 속이 단단하다//
  • 사람의 / 마음이라고 / 그 껍질이 뭐 다를까?
  • 졸작 '껍질論' 전문

풀들이나 굼벵이, 지렁이 같은 것은 먹이 사슬의 최하위에 놓여 있다. 그만큼 많은 동물이나 식물들의 먹이가 되어야 하기에 번식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그런 먹이사슬의 구조까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망가트린다. 자연을 직접 망가트리지는 않아도 그 위에 몸을 얹고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동조자이고 공범이다. 나도 그 죄인의 한 사람이다.

나는 나의 양심의 죄에 끝없이 반성한다. 그리고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 글을 쓴다. 이 세상은 넓은 교도소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몸으로 지은 죄, 마음으로 지은 죄, 행동으로 지은 죄, 생각으로 지은 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내가 풀잎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 굼벵이나 지렁이로 살아갈 수도 없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그 운명의 죄가 너무 커서 글을 쓰는 고통을 내게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글로 용서받기 위해 노력을 한다.

날마다 뉴스에는 덧없는 사람들의 죄를 묻는다. 그러나 나는 나의 죄를 스스로 묻는다. 사랑이란 명목으로 아픔을 주고, 가족이란 명목으로 고통을 주고, 친구란 이름으로 나의 모든 허물을 덮어달라고 부탁만 해왔다. 내 모든 죄, 깊이 새기며 살겠다. 내 가족, 친구, 지인들의 깊은 바닥이 없다면 내가 어찌 좋은 글의 밑천을 구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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