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살며 사랑하며
<살며 사랑하며>좋은 만남 '성숙한 몸짓' 봄이 온다.
△ 임길자<정토마을 원장>

지난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나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이었다. 그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원주시협의회에서는 북한이탈주민(당시는 ‘새터민’이라는 명칭 사용)과 결연 맺기 사업을 했다. 사업의 주된 목적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안정적 정착 도모”였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원주시협의회 위원들은 큰 경계없이 그들과의 관계 맺기를 진행했다.

나와 연이 닿은 한 북한이탈주민은 30대 중반의 젊은 부부였다.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첫 만남은 낯설고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는 곧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멀리서 살다가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온유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과 식사를 하면서 내가 먼저 물었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그대들을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요?”라고 ... 그때 아내가 말했다. “저는 친정 부모님과 언니가 함께 내려왔지만 남편은 저 말고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제 남편의 누님이 되어 주세요. 그리고 저는 선생님을 제 아이의 고모님으로 부르고 싶습니다”라고... 참 신기했다. 생전처음 만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이름을 서로에게 붙여주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의 누나가 되었고 아이에겐 ‘고모’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친정 식구들에게 그들 가족을 소개했다. 평소 딸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어주시던 아버지셨는데 첫 반응은 거부였다. 전쟁을 경험했던 아버지 입장에서는 북한에서 왔다는 그들을 아무런 경계없이 받아들일 부분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의 설득에 넘어가 주셨다.

날씨가 좋은 어느 날 나는 그들 가족(장인, 장모 등)들 모두를 아버지가 계신 고향집으로 안내했다. 아버지께서는 동네 집안어르신들과 함께 그들을 기쁘게 맞아 주셨다. 그때부터 그들은 여느 일가친척들처럼 설날이 되면 아버지께 세배도 올리고, 가족 중 누가 생일이면 맛난 음식도 나누고, 주말이면 함께 외식도 하며 십오년째 그렇게 어울려 지낸다.

어느새 그들의 아들은 중학생이 되었고, 내게 누나라고 부르는 그는 흰머리가 드문드문 눈에 띄는 나이! 50을 넘긴 중후한 중년이 되었다. 그동안 많이 힘들고 고단했을 것이다. 숱한 나날을 잠 못 이루며 흔들리는 자신과 끊임없이 투쟁 했을 것이다. 아주 가끔은 북한이탈을 후회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족은 이 사회에서 자신을 녹이는 일에 성공한 듯 싶다. 오늘도 여전히 각자의 일터에서 성의를 다 하는 걸 보면.

요즘 자주 접하는 뉴스 “청와대가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온 4월말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준비 작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는 보도이다. 북한이 24일 남북정상회담 의제 등을 협의하기 위한 실무 차원의 남북고위급회담을 오는 29일 열자는 우리 정부의 제안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지난달 30일 3차 회의를 열고, 전날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다뤄진 남북정상회담 일정과 의제, 대표단 구성과 관련한 후속 논의에 착수했다. 정부는 정상회담 의제로 한반도 비핵화와 군사적 긴장 완화를 포함한 항구적(恒久的) 평화 정착, 남북관계 진전 등을 상정해 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정부는 여러가지 고민이 있을 것이다. 희망이라는 기대와 반가움이 주는 설렘이 공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진실들은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듯하다.

통일을 꿈꾸고, 희망을 말하고, 평화를 그리며 새날을 설계하는 미래 세대들에게 어른들의 좋은 만남이 성숙한 몸짓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서로를 상처내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으니 우선 서로를 이해하는 일부터 했으면 좋겠다.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인정하는 일부터 했으면 좋겠다. 서로의 가치와 존재를 알아봐 주는 것부터 차근차근 했으면 좋겠다. 내게 누나라고 부르는 그의 눈에선 아직도 고향생각에 눈물이 고인다. 서로를 향한 소중한 마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대한민국은 온전해 질 것이다. 봄이 온다.

임길자  wjnews01477@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PHOTO NEWS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