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우리의 소원은 평화, 지금 출발한다.
<살며 사랑하며>우리의 소원은 평화, 지금 출발한다.
  • 임길자
  • 승인 2018.04.30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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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 <정토마을 원장>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즈음하여 

지난 27일 드디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많은 사람들의 바람과 염려 속에서 기대와 희망이 실타래가 되었던 지난 시간들이 오늘따라 온풍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마도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기대가 현실로 다가오는 듯한 기분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전쟁을 경험하진 않았다. 정전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태어난 세대로 전쟁에 대한 직접 경험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힘입어 전쟁을 경험한 것처럼 성장했다. 성장기 내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했다.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국가 교육의 틀 속에서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 되어 노래로 불러졌다. 한 세월동안 우리는 삶의 치열한 현장을 몸부림으로 경험하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던 혼돈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묻혀져 갔다.

내 나이가 42살 되던 해! 통일에 대한 기대는 다시 현실의 얼굴로 끌어 올려졌다. 2000년 6월 13일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이 평양의 순안공항에 도착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악수 나누던 모습은 인생의 중년에 접어든 나에게 강한 진동이었다. 잠시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국제 사회가 냉전 상태(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이 서로 적대시)에서 차츰 벗어나면서 남북한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1990년 신년사를 통해 ‘남북 최고위급 회담’을 제안했고, 당시 남한의 김영삼 정부도 이를 환영하며 남북정상 회담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1994년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는 무산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남북 기본 합의서 이행과 북한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며 남북 정상 회담을 제안했다. 이에 북한의 호응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남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직접 만난 것은 분단된 이후 처음이었으니, TV를 통해 현장의 소식을 접했던 많은 국민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이 많았다.

그 후 다시 7년이 지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 2007년 10월 2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무현! 그의 모습처럼 뚜벅뚜벅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그때 TV 생중계를 보던 나는 눈물이 났다. 내게 이산가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양에 꼭 가야 할 간절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슴속에서 뭉클거리는 덩어리들이 눈물로 쏟아졌다. 많은 국민들이 그랬을 것이다. 물론 그 눈물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사연을 달리했을 테지만... 이렇게 우리는 두 번의 역사적 순간을 경험하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란 사실이 그저 꿈을 꾸듯 막연함이 아니라 실제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확신의 점을 찍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년의 세월은 또 무심히 흘렀다. 흘러간 세월의 무게만큼 사연도 많았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의심하고, 반목(反目)하며 우리 사회 내부에선 각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편견과 오만이 삶의 주요 공간을 얼룩지게 했다. 하루가 멀게 쏟아지는 부적절한 언어들이 세상에 갈등을 만들고, 그 언어들을 퍼나르는 뭇 사람들의 행위는 온유하게 유지되어야 할 서로의 관계를 멍들게 했다. 내 나이 60살을 맞는 2018년 4월 27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군사분계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 전통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서 남측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우리가 맞이하는 입장이 되었다. 욕심은 금물이다. 편견도 금물이다. 교만해서도 안 된다. 앞서가지도 말자. 짐작하지도 말자. 그리고 서로를 믿자. 의심하지 말자. 그냥 눈앞에서 보여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침착하고 진중하게 더도 덜도 아닌 나름의 정직한 소신대로 정중동(靜中動)하자고 말하고 싶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듯이 지금은 평화체제 구축이 먼저다. 아름다운 평화를 그리자. 착한 기운을 담아 멋지게 만들어 보자. 작품은 만드는 사람의 노력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고급은 비싼 값을 치러서 얻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며, 사람을 좋아하며, 사람 중심으로 만든 작품이 고급인 것이다. 우리의 소원은 평화! 지금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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