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사랑하며>아버지의 그늘
<살며사랑하며>아버지의 그늘
  • 편집국
  • 승인 2018.05.14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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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 <정토마을 원장>

5월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 최고인지라 계절의 여왕이라 부른다. 유난히 경사스런 날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미래 세대들을 귀히 여기는 어린이날, 부모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어버이날, 교권 존중과 스승 공경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여 교원의 사기 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지정된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또 5월에 둘이 하나 된다는 뜻을 담아 지난 2007년도에 법정기념일로 제정된 5월 21일은 부부의 날,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짊어질 성인으로서 자부심과 책임의식을 부여하는 날로 만 19세가 된 젊은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은 성년의 날, 다양한 민족·문화권의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2007년도에 국가기념일로 제정한 5월 20일은 세계인의 날이다. 5월 한 달 내내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중심으로 서로를 응원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서로에게서 에너지를 얻고 나누는 우리들의 날이다. 듣기 좋은 말, 보기 좋은 얼굴, 따뜻한 손길이 더 그리운 계절이기도 하다.

나의 아버지는 지난 해 6월 독거노인이 되었다. 지병으로 고생하던 어머님을 멀리 보내고 한동안 많이 힘들어 하셨다. 지루한 병수발에 지치기도 했으련만 혼자 겪는 고독의 고통보다는 덜 했나보다. 자식들이 여럿 있지만 저마다의 분주한 삶이 있으니 마음처럼 아버지를 챙기지 못해 안타깝다. 주말이라도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지 마음을 먹어보지만 그 또한 일관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느 금요일 오후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오늘 저녁에 집에 오나? 냉장고에 얼은 삼겹살이 있는데 네가 온다면 미리 녹여놔야 할 것 같아서... ” 6시 30분쯤 퇴근을 하고 아버지 댁으로 갔다. 아버지께서는 삼겹살을 구어 먹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계셨다. 밭에서 막 뜯은 깻잎과 부추도 ... 그런데 깻잎이 두 접시였다. 하나는 데친 것이고 하나는 생 깻잎이었다. 난 여쭈었다. “아버지! 왜 깻잎이 두 가지예요?” 아버지께선 “깻잎 향이 좀 진해.

그래서 네가 안 먹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데쳐보았어. 내가 딸의 입맛을 잘 몰라서...”

순간 가슴이 먹먹해 졌다.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아버지와 경험하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다정하고 친절한 아버지의 몸짓은 내게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증조부모가 다 계신 대 가족 속에서 난 성장했다. 층층시하(層層侍下)에서 어르신을 모시고 살았던 지라 아버지는 당신자식을 제대로 품에 안고 쓰다듬어 본적이 없단다. 더욱이 아버지 기억에 맏딸인 나의 영유아기 추억은 별로 없다. 그때의 시대적 상황이 그러했으니 그도 무리는 아니라도 본다. 그때의 그 아버지는 어느새 팔순을 넘기셨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만 해도 난 아버지를 노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아버지 건강에 대해서도 그리 민감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 혼자가 되신 후에야 그 모습의 오늘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가 노인이라는 것을... 그래서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버지께 고독은 심각한 고통이란 것을...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아버지의 외로움은 그저 적적함이 아니라 피부를 파고드는 통증이란 것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누군가의 어미가 되고나면 부모를 알겠지 싶었다. 그때가 되면 내 부모님의 소소한 감정들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도 했다. 결혼이라는 이유로 부모님 슬하(膝下)를 떠나온 지 어느새 34년이 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아직도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따뜻한 언어가 필요한 아버지에게 나는 자식의 감정으로 이야기를 한다. 친절한 보살핌이 필요한 아버지에게 나는 자식의 기준으로 몸짓한다.

지난 어버이날 아버지 댁에 갔더니 “어찌된 일인지 내 몸이 작년같지 않아. 기운이 없어 일을 못하겠어...” 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에게 딸은 “늙으면 다 기운이 없지. 기운이 닿을 만큼만 일하면 되지, 왜 무리를 하세요...” 라고 에구~~ 아버지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닌데... 독설이다. 돌아서서 후회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편이었고, 선선한 그늘이었고, 안전하고 편안한 쉼터였거늘...

우리들의 부모님은 언제나 자식이 먼저였다. 우리들은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간절한 기도에 의지하며 오늘을 산다. 건강하도록, 안전하도록, 행복하도록, 끝나지 않는 부모님의 절절한 바람으로 우리는 또 내일을 설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아직은 괜찮으실거야' 라며 우선순위를 바꾸기도 했었다. 이제 스스로를 단속한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깊이 새기며 교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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