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모자(母子)의 슬픈 대화
<살며 사랑하며> 모자(母子)의 슬픈 대화
  • 임길자
  • 승인 2018.05.28 05: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길자 <정토마을 원장>

UN은 65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인구의 7% 이상이 되면 고령화 사회라고 했다. 그리고 14%이상이 되면 고령사회, 21%를 넘게 되면 초고령 사회라고 칭한다.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노인 인구의 증가는 국가적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게 한다. 물론 “노인인구 증가” 자체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저출산으로 인하여 경제활동인구가 노인인구의 증가에 비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걱정이라고 할 수 있다.

원주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원주시 인구는 341,337명 중 65세 이상 인구는 45,251명으로 이미 13%를 넘어섰다. 고령사회로의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실정이므로 원주시 최고 의사결정자는 여러 가지 사회 환경의 변화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과학에 힘입어 평균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 좋은 소식일 것이다. 그래서 정년 연장을 권고하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노인인력 활용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원주시의 경우 노인일자리 전담기관이 “원주시니어클럽”이다. 노인일자리 창출과 개발을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들에게 건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노동시간을 드리고 보상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노인일자리 참여에 포함되지 못하는 노인들은 신체적․경제적 이중고(二重苦)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곧 건강이 악화된다는 것이다. 의욕적으로 일이 하고 싶다 하더라도 신체적인 조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부득이 누군가의 직접적인 돌봄을 필요로 하게 된다. 옛 말에 ‘긴병에 효자 없다’고 했다. 잠깐의 질병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 대부분의 자식들은 부모님 돌봄에 누구나 적극적일 수 있다. 그러나 노인성 질환은 다양한 원인으로 오랜 기간 이어지는 특징이 있고, 더욱이 인지증 장애 즉, 치매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난주 경험했던 사례를 소개한다. 72세 된 남자어르신이 시설을 방문했다. 부득이 어머님을 시설에 입소 모셔야겠다고... “나의 어머님은 올해 92세가 되셨습니다. 그동안 치매로 인해 어머님과 함께 사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었는데, 얼마 전 집에서 넘어져 팔목이 골절되어 이제는 식사수발은 물론 대소변까지 도와드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나도 아직은 일을 해야 먹고사는 형편입니다. 더는 어머님을 감당할 수 없어서 시설에 모시고 싶어서요...” 아들은 일찍이 혼자되어 두 남매를 어머니와 함께 키우며 살았단다. 두 남매가 할머니 손에 자랐고, 그 고마움을 모르지 않기에 웬만하면 어머니의 노후를 잘 마무리 해 드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마음만으로 살아지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아들은 시설에 가기를 거부하는 어머니를 ‘팔목 골절이 다 나을 동안만’ 이라는 조건으로 설득하여 어렵게 시설에서 모시게 되었다. 일주일쯤 되었을 무렵 아들은 어머니를 찾았다. 어머니의 반응은 몹시 거칠었다. 입소 시 설득했던 내용과 상관없이 당신을 버렸다는 생각으로 격한 감정을 들어내며 아들을 몹시 고란하게 했다. 어머니는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당신이 하고 싶은 말씀만 하신다. 이성적인 대화가 절대 곤란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어머니를 이해시키려 애를 써 보지만 어머님의 역정(曆正)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아들은 눈물을 훔치며 어머니 방을 나왔고, 아들의 뒤통수를 향해 쏟아내는 어머님의 불편한 언어들은 듣는 이를 슬프게 했다. 양쪽의 입장을 모두 헤아려 드리는 것이 나의 일인지라 안타까움이 컸다. “아들의 어려운 사정을 어머님께서 조금만 이해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또 어머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혼자계신 집 보다는 시설이 나을 수도 있을텐데... ” 서로를 향한 부족한 이해는 서운함을 잉태했고, 고단한 현실에서의 이기심은 서로를 원망하게 했다.

노인복지 일을 시작한지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여러 가정사를 직접 듣고 관찰했다. 어느 집에선 딸이고, 누군가에겐 시누이이며, 또 한 남편의 아내이고,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가정이라는 조직 내에서 고단하게 역할과 책임을 짊어지고 사는 나로서는 때로 주어진 일상이 버겁기도 했다.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30여년의 세월! 요즘 들어 생각이 많아진다. 거동이 어려워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직접 캐어해야 하거나, 치매로 이성적인 대화가 곤란한 부모님을 모시고 늘 고요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 참 어렵다. 모자(母子)의 슬픈 대화가 더 큰 요동으로 느껴지는 가정의 달 5월! 잠시 내 안의 나를 살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