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정치혐오 부추기는 SNS괴담
<비로봉에서>정치혐오 부추기는 SNS괴담
  • 심규정
  • 승인 2018.05.28 0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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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타임머신이 향한 곳은 조선시대 중종대. 도성 곳곳에 벽서(壁書)가 나붙었다. 당대 권력자 김안로가 윤임과 결탁해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없애려 한다는 내용이다. 경원대군은 계비인 문정왕후의 외아들이었다. 당시 중종에게는 맏아들인 인종이 있었지만 생후 1개월만에 생모가 죽게되자, 문정왕후가 인종의 계모역할을 하고 있었다. 권력자들은 세자책봉을 둘러싸고 인종을 보호하는 김안로, 윤임측과 문정왕후를 옹호하는 윤원형(문정왕후 동생) 일파의 갈등이 격했다. 문정왕후 측은 이 벽서사건을 계기로 중종에 “김안로가 왕자(경원대군)를 죽이려 한다”고 공세를 폈다. 결국 김안로는 실각됐고 귀양지에서 사약을 받았다. 윤임을 비롯한 수많은 선비들이 훗날 을사사화에 연루돼 목숨을 잃었다. 역사서는 이 당시 벽서를 윤원형이 애첩 난정과 짜고 꾸민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중종사후 인종마저 세상을 뜨자 경원대군이 왕위를 이었다. 문정왕후 일파가 정적을 제거해 승리한 셈이다.

벽서 또는 괘서(掛書)는 관리들의 비리를 익명으로 고발하거나 힘없는 백성들이 조정에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하지만 권력자들에게는 정적을 제거하는 강력한 무기로 악용됐다. 주로 남을 모함하고 무고(誣告)하는 데 사용되어 수많은 옥사·사화의 원인이 됐다. 벽서로 인해 사회불안이 심화되자 조선시대에는 이를 법으로 엄격하게 금하였다. 숙종 5년 서적원(書籍院)에서 간행한 ‘대명률직해 大明律直解’에는 벽서를 보고도 즉시 소각하지 않은 자와 그 내용을 전파하는 자는 전 가족을 국경지방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형벌을 내리기까지 했다.

조선시대 벽서의 현대판 버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고 단언할 수 있다. 최근 필자는 페이스북을 보고 황당한 글을 접했다. 가짜뉴스의 대표적인 사례 몇가지를 보자. 전국적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간현관광지 소금산 출렁다리 과연 안전한가?’라는 글에는 “공사도 면허도 없는 일반사람이 남의 면허 빌려다 공사했다는 소문이 있던데...”라는 댓글이 달렸다. 교묘하게 ‘소문이 있던데’라고 단정짓지 않았지만, 이를 본 불특정 다수가 “비리가 있네”, “특혜를 줬네”라고 오해할 수 있다. 소금산출렁다리는 총 공사비 30억원이 투입된 공사다. 능선과 능선을 연결해 와이어를 몇겹 연결해서 설치하는 고난이도 공사다. 면허대여를 통해 공사를 했다는 게 과연 맞는 주장인지,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내용이다.

문막SRF열병합발전소 발전소 논란에 대해서는 ‘청정도시에 쓰레기 소각은 어울리지 않겠죠. 그것도 하루에 1,000톤 가까이...’라고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발전소에서 태우는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 원료로 만든 정부에서 공인한 SRF고형연료다. 이 글에 달린 댓글은 더욱 가관이다. ‘사드보다 백만배 더 위험한데 원주시민은 착한규, 멍청한규?’라고 비꼬고 있다. SNS에 떠도는 이런 글은 일부이지만 그 폐해가 우리 사회 건강성을 해치는 독버섯으로 비유되고 있다. 전제군주시대에 서슬퍼런 권력 앞에서 익명서가 만연했지만, 지금은 표현의 자유가 만발한 사회여서 카더라통신이 실명으로 SNS에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실명으로 과감하게 게시하다보니 마치 사실인것 처럼 착각에 빠지게 한다. 여론을 심하게 왜곡해 시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한 도시사 후보에 대해서는 ‘빨갱이 알콜중독자는 정신병원에 감금시켜야 한다’라는 저주의 댓글이 달렸다. 이런 괴담은 공통점이 있다. 특정후보를 추겨 세우거나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글에 어김없이 등장하고 특정진영 성향의 인사들이 단골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사회에 네거티브, 마타도어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오판에 사로잡혀 있는 시대착오적, 소아병적 인사들이 있는 것 같다. 선관위와 사정당국은 선거때마다 어김없이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이렇게 버젓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것을 보니, 당국의 단속의지를 조롱하고 있는 듯 하다. 며칠 남지 않은 6.13지방선거가 진흙탕 선거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SNS바다에 떠돌고 있는 무근지설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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