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태풍
<세상의 자막들>태풍
  • 임영석
  • 승인 2018.07.09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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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석<시인>

태풍 ‘쁘라삐룬’이 많은 비와 바람을 몰고 지나가고 있다. 농경지가 침수되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물이 차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해마다 몇 개의 태풍이 이렇게 우리들 삶 중심을 지나가며 가슴을 졸이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자연의 위력 앞에 망연자실한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태풍은 자연 생태계에 건강하게 살아가는 유전자를 남기는 역할을 한다. 강한 비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열매를 남겨 건강한 씨앗이 되도록 한다. 또한 들판의 풀잎들도 빗물에 잠기고 물속에서 살아갈 수 없는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힘을 키워낸다.

이렇게 태풍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건강한 힘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에게도 비바람과 홍수에 대처하는 지혜를 터득하게 만든다. 자연은 해마다 반복된 연습을 지켜 오랜 시간 동안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몸에 지니게 만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러한 태풍 같은 뉴스들로 넘쳐난다. 노동자가 주 52시간 노동일을 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고용주들,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려놓으니 그 시간당 임금을 줄 수 없다고 각종 수당 상여금까지 기본급화 시키는 편법, 노동부 직원이 삼성그룹의 노조에 깊숙이 개입해 노조활동을 방해했다는 뉴스, 그리고 재벌의 갑질 등등 많은 뉴스들이 우리들 가슴을 흔드는 태풍처럼 몰려온다.

그러나 태풍이 몰려오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태풍 속에 숨은 또 다른 태풍의 눈을 의심해야 한다. 태풍은 그 태풍의 고약한 버릇을 놓고 가는 게 아니라 뒤따라오는 태풍의 힘을 예측하게 한다.

태풍의 이름을 지을 때는 나라별로 돌아가며 태풍의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가능한 태풍의 이름은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신의 이름을 짓거나 연약한 동물이나 식물, 또는 여성의 이름들을 붙인다고 한다. ‘쁘라삐룬’도 비를 관장하는 신인 바루나의 태국어 명칭이라 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 

저게 혼자서 둥그러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 대추야 /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시 '대추 한 알' 전문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을 읽으면 대추 한 알이 익기까지 태풍 몇 개 지나가고, 천 둥 몇 개 지나갔고, 벼락 몇 개 몸서리치게 지나가야 대추 한 알이 익는다고 한다. 이 세상도 그러한 것 같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쟁의 아픔을 깊이 깨달아야 하고, 가난의 고통을 넘겨야 평화의 소중함을 느낀다. 이 모든 것이 태풍이 지나가야 비로소 평소의 고요함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끼게 해 주는 격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삶의 바람이 지나간다. 그 바람이 때로는 거대한 태풍처럼 세상을 휩쓸어 간다. 건강한 세상은 태풍 같은 바람을 이겨내는 세상을 말한다.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 태풍이 지나갈 때 아무런 피해가 없도록 하는 간절함을 담아 태풍의 이름도 소중하게 짓는다고 한다. 그러나 번번이 그 기대와는 달리 태풍의 위력이 커서 세상을 뒤집어 놓을 때가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 위력도 간절한 소망 때문에 줄어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자연의 태풍은 이 지구의 건강함을 지켜내려는 몸부림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보다는 자연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생태계의 몸을 단련시키는 과정들이다. 때문에 인간은 이러한 태풍의 위력을 항상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배워야 할 것이다. 나무와 풀들이 하늘을 뒤덮어 살지 않는 것은 태풍의 무서운 힘을 알기 때문에 그 경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도 무서운 태풍을 맞지 않으려면 사람의 道를 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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