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나에게 글쓰기는 산고(産苦)다
<비로봉에서>나에게 글쓰기는 산고(産苦)다
  • 심규정
  • 승인 2018.07.09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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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얼마전 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글쓰기를 하던 중이었다. 어떤 어휘를 문장에 배치해야 하는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리숱을 두 손으로 붙잡고 얼굴을 울그락불그락 거린 끝에 찾아냈지만, 아뿔사! 다른 기사에 이미 죽치고 있는 게 아닌가. 글쓰기를 멈췄다. 속으로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꼭 서점에 간다. 일주일에 2~3권의 책을 읽고 있다. 읽으면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연필로 밑줄을 긋고, 다 읽고 난 뒤 블로그 비밀방에 옮겨 적는다. 시간날 때마다 그 메모를 읽고 또 읽는다. 백과사전처럼 머릿속에 저장해야 글쓰기 할 때 언제든지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

주변 인사들이 내게 자주 묻는 말이 있다 . “신문제작하기 힘들지 않냐”. “지면을 어떻게 메우냐”고. 나는 말한다. “글쓰는 직업을 거의 30년 가까이 했는데, 이젠 몸에 뱄다”, “거의 기계수준이다”라고. 신문기사는 문어체고 방송은 구어체다. 신문사와 방송사를 모두 거쳤기 때문에 일장일단(一長一短)을 적절히 가미하도록 노력한다. 필자의 글쓰기에는 원칙이 있다. 우선 주제가 선정되면 머릿속에 논리적 구조를 만든다. 기승전결, 여기에 도입부분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가급적 어떤 사례로 출발한다. 박진감이 있으므로 아주 좋다. 그리고 각각의 구조속에 어떤 어휘를 사용할지, 단어는, 사자성어는, 속담은, 동서양 경구는? 등.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배치를 완료한다.

건설현장을 예로 들면 기초공사가 끝난 셈이다. 그리고 속도감 있게 써 내려간다. 컴퓨터 자판위에서 손가락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다. 창밖에서 참새의 소프라노, 까마귀의 바리톤 화음에 맞춰 적막을 깨는 자판의 강약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여백이 채워지면서 성취감을 맛본다. 이때까지 오탈자, 어긋난 문장구조는 싹 무시한다. 1차 작성이 끝나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내려간다. 자구수정은 물론 논리적 구조가 잘못됐을 경우 문장을 잘라 다른 곳에 배치한다. 문장을 이리저리 옮겨보고, 칼질도 서슴없이 감행한다.

구사한 단어, 어휘 가운데 과장된 표현은 없는지, 반복된 표현, 주제에 벗어나서 과감하게 버려야 할 문장은? 이렇게 완성된 문장을 압축하는 과정을 거친다. 민감한 주제의 기사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고민한다. 상대가 태클을 걸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있다면 어떤 안전핀을 마련할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해답을 찾는다. 마지막은 내부 독자(후배기자, 직원)의 평가를 받는다. 필자는 수습기자시절부터 데스크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은 말이 있다. “내부독자의 평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금도 이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기고 있다. 후배들이 “편집장님, 내용이 너무 강해요”, “이 문장은 군더더기 같아요”라고 지적을 한다. 새까맣게 어린 후배들이지만, 맞는 지적이면 과감하게 수정한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읽고 또 읽고, 물 흐르듯 막힘없이 술술 읽히면 오케이다. 전체적으로 박력이 있고 글의 강조점도 선명하면 메시지 전달도 뛰어나다.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제목 달기다. 제목은 독자들에게 던지는 미끼다. 방송뉴스의 앵커 ‘어깨걸이’처럼...전체 글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장 혹은 단어를 말한다.

좀더 드라마틱하고, 임팩트 있는 제목을 찾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신문의 경우 15자 이내가 적당하다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15자도 길다는 의견도 있다. 섹시하고 눈에 확 와닿는 제목을 찾기 위해 30분 이상을 고민한 적도 있다. 이렇듯 긴장의 연속에서 나온 신문. 그러나 간혹 분풀이성, 항의성 전화가 걸려온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신문을 제작하다보면 실수를 할 수 있다. 이럴 경우 과감하게 바로 잡게 된다. 그러나 앞뒤 다 재보고, 법적인 문제까지 검토한 내용까지 설사병 걸린 환자처럼 마구 욕지거리를 해대는 사람을 접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글은 다듬어진 생각이라고 했다. 글쓴이의 사색과 성찰의 과정, 그리고 고된 훈련을 통해 쥐어 짜내 나온 생명체다. 글쓴이의 지적수준과 소속 언론사의 격을 평가하는 지표가 될 수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알베르트 까뮈는 말했다. “분명하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독자가 모이지만, 모호하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비평가만 몰려올 뿐이다”라고. 바야흐로 똑똑한 독자들이 글쓴이를 저울 위에 올려놓고 역량을 재는 시대다. 나는 오늘도 더 세련되고 품격있는 지성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해답을 책 속에서 찾고 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기에 채찍질을 하면서...나 자신을 업그레이드 해주니 사랑의 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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