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그땐 그랬지요. 오늘은 자원봉사 하러 왔어요
<살며 사랑하며>그땐 그랬지요. 오늘은 자원봉사 하러 왔어요
  • 임길자
  • 승인 2018.07.09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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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 <정토마을 원장>

여름방학 철이 되었다. 학교마다 차이는 좀 있겠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미 6월 셋째쯤 여름방학에 들어갔고, 중·고등학생들은 7월 중순쯤 예정하고 있는 듯하다. 요 며칠 학생들의 자원봉사 문의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자원봉사(自願奉仕)의 사전적 의미는 “대가 없이 누군가를 돕거나 자발적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참여하여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활동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타심 또는 애타심(愛他心), 즉 다른 사람의 안녕을 위한 마음에서 활동을 전개한다.

“나의 노력이 누군가의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나의 땀을 주리라”라는 진심을 담아 시간을 쪼개고, 경우에 따라서는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그 활동에 전념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또 어떤 이는 봉사활동이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봉사 활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건강한 시각으로 살펴보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주어진 현실을 더 깊고 감사하게 깨닫게 된다는 이도 있다. 또 어떤 이는 봉사활동을 시민,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봉사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어떤 이는 신앙 활동으로 더 높은 영적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여기며 종교적인 의무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한다는 이도 보았다.

아무튼 봉사활동은 나 보다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에너지를 나눔으로서 서로 행복한, 서로 기쁜 일상을 만들고 싶은 착한 욕구의 다른 표현이라고 본다.

오래전 모 고등학교에서 협조공문을 한 장 받았다. 내용은 해당 학교 1학년(16세)학생이 같은 반 친구에게 가해를 하여 징계를 받게 되었는데 사회봉사명령 30시간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 학생을 우리 기관에서 사회봉사명령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어르신들만 사는 집에 학교에서 폭력전과가 있는 학생을 며칠간이라도 함께 생활하게 한다는 것이 살짝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설의 원장이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의 엄마이거늘 흔쾌히 허락을 하고 다음날 그 학생을 만났다. 그와 30분 정도의 만남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이 아이도 피해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상대 학생의 부모 입장에서는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상황에 따라 시시비비의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생각이나 판단능력이 올곧게 성장했다고 보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고, 어떤 환경에서 그 아이가 성장했느냐에 따라 의견을 달리할 것이다.

그날 내가 만난 아이는 ‘세상에 괜히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한다. 자기는 어른들을 믿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이 혼돈의 시대에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의 내면에 눈물이 고였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매우 온순하고 성실했다. 낯설고 불편한 일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4일간의 봉사명령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갔다. 그 후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토요일 사무실에 나갔는데 키가 헌칠한 청년이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찾아왔다.

나는 그를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원장님! 저 기억하세요? 예전에 사고 쳐서 벌 받으러 왔던 000입니다. 지금은 00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원장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어차피 여름방학동안은 자원봉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원장님이 받아주시면 여기서 하려고요...” 난 한참 먹먹히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어쩌면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질 않아 그냥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과거는 정말 그냥 과거일 뿐 너무나 멋진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내가 물었다. “아직도 어른들을 믿지 않습니까?” 그는 말한다. “제가 그때는 왜 그렇게 철부지였는지요... 그때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워 죽겠어요. 원장님께서도 저의 과거를 잊어주시면 좋겠는데...”라고 ...

아이는 세상에 나올 때 부모를 선택하거나 환경을 선택하지 않는다. 아이는 어른들의 노력으로, 어른들의 의지로, 어른들의 판단으로 생명을 가지게 되어 사람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다. 자식은 그의 부모가 낳았을 뿐 부모의 소유물은 아니다. 어머니의 배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아이는 아이의 인생이 있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성장기동안 안전한 울타리일 뿐.

멋지게 성장한 그 청년과 나는 한참 수다를 떨었다. 즐겁고 재미있는... 그는 오늘도 어디선가 세상의 이로움을 위한 설계도를 완성해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큰 소리로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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