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자기 방식의 해석이 아닌 이해가 필요해
<살며 사랑하며>자기 방식의 해석이 아닌 이해가 필요해
  • 임길자
  • 승인 2018.07.23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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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 <정토마을 원장>

계속되는 폭염! 오존농도 나쁨! 요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환경이다. 노약자의 건강과 안전을 담당하고 있는 입장에선 걱정이 크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는 어르신들에겐 이 무더위가 그냥 계절이 주는 환경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로 느껴질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배분되고 있는 이 더위는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도 폭염에 대응하는 언어와 태도가 다르다. 어떤 이는 ‘살인적 더위’라고 말을 하고, 어떤 이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요동치는 몸을 수습하기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선 오늘도 앞․뒤․옆으론 북청색의 물결이 일렁이고, 창가로 보이는 나지막한 산에선 이름 모를 새들의 합창이 간간히 들린다. 지금 주어진 공간을 언어로 표현하자면 더위가 고통일리 없는 한적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마다 온종일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으니 분명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일기(日氣)는 정상이 아닌 듯싶다.

이 엄청난 더위 앞에서도 이○○님께선 겨울내복을 입고 계신다. 이마에선 땀방울이 흐르고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는데도 말하다. 옷을 갈아입히기 위해 애를 써 보지만 오늘도 실패다. 착한 미소로, 예쁜 언어로, 부드러운 손길로 이○○님의 마음을 사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결국 이○○님은 화를 내시고 당신 방으로 들어가신다. 최○○님께선 오늘도 보따리를 싼다. 쌌다 풀었다를 반복하면서 한 나절이 간다. 가끔은 당신의 옷을 누군가 훔쳐갔다고 화를 내시기도 한다. 없어 졌다는 옷을 찾아 온 방을 뒤지고 서랍을 살펴보지만 최○○님의 옷은 나오지 않았다. 마침 최○○님의 며느리가 찾아와 산책을 나간 다음, 직원들은 최○○님께서 깔고 계셨던 이불 속에서 없어졌다던 옷을 찾는다. 산책에서 돌아온 최○○님은 잃어버렸다던 옷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임○○께선 노래를 잘 부르신다. 젊었을 적 꿈이 가수였다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에 걸맞게 훌륭한 노래실력을 갖추고 계신다. 임○○님의 노랫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당신 자신에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는 표현이지만 곁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 자체에 공해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자주 분쟁이 생긴다. 거친 언어로 상처가 나고, 불편한 목소리로 관계를 깨진다. 어느 날 같은 방에 계시는 두 어르신의 가족들이 만났다. 같은 공간에서 일어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두 가족은 각자의 입장에서 이해를 달리한다. 당신 어머님이 조금이라도 더 피해를 보았을까봐 두 가족은 저마다의 다른 지표로 내용을 살핀다. 어르신의 신체적․정신적 조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각자이지만, 내면을 채우고 있는 저마다의 이기심이 불편한 관계를 설계한다. 저마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주관적 해석보다는 아무런 이유도 달지 않는 이해가 필요한데

물론 인간관계 속에서 발동하는 이기심이 꼭 문제는 아니다. 삼라만상에 생명을 가진 모든 이름들에게 나타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자기본능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 자신에게 가해지는 약간의 손해는 또 다른 누군가를 살아있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의지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소리 내고 싶어진다. 상처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손해를 즐거워하는 사람 또한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이 요만큼이라도 고요한 것은 그 누군가가 자신의 상처를 감내하며 손을 내밀었고, 또 그 누군가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며 마음을 내어 주었기에 가능한 현실이 되었다. 희생과 사명으로 세상을 보듬고 있는 고마운 사람들의 공덕에 우리들의 오늘은 나름 살만하다.

햇살이 날카로운 오늘!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것이 익숙한 일상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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