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통제권력
<세상의 자막들>통제권력
  • 임영석
  • 승인 2018.08.06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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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석<시인>

프랑스 철학자 푸코(1926~1984)는 심리 정치에서 죽음 권력은 너무 성긴 까닭에 통제 권력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생권력(살아있는 권력)은 생물학적 과정과 법칙에 개입하며, 주민을 조종하고 인도한다는 권력의 심리를 말하고 있다.

푸코가 말하는 죽음 권력은 과거의 권력을 의미하고 생권력은 현재의 권력, 즉 진행되고 있는 정치를 말한다. 여기에서 나는 통제 권력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들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통제란 일정한 방침이나 목적에 따라 행위를 제한하거나 제약하는 것, 그리고 권력으로 언론, 경제 활동 따위에 제한을 가하는 일이라 했다. 이러한 막강한 통제가 권력까지 힘이 더해질 때 통제 권력이 된다. 이러한 통제 권력은 결국 국민의 자유와 인권보다는 정권의 유지에만 심혈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의 정권이 그 대표적 통제 권력의 본보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 현실도 이 통제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는 것이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있다. 기무사의 계엄령 작성 경위라거나 드루킹의 댓글 조작 협의라거나 유신 체제 등이 통제 권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모순된 방법들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국군 기무사령부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군사에 관한 정보 수집 및 수사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방부 직할 군 수사정보 기관”이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기관에서 나라의 정치에 개입하는 계엄령에 관한 문건 등을 작성했다는 것은 본연의 업무와는 누가 봐도 동떨어진 일을 자행하였다고 생각을 하게 한다.

푸코는 생물학적 과정(선거) 없이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국민의 심리를 이용하는 그 자체를 통제 권력의 모순된 이탈로 바라보고 있다고 본다. 북한의 권력이 3대에 걸쳐 변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점은 통제 권력을 편법으로 이용하여 국민이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고 정권의 유지에만 그 권력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권력을 통제하는 방법에서 자유주의는 국민의 의사를 자유롭게 반영하는 방법을 동원하고 공산주의는 당의 정책을 국민에게 강제해 왔다는 것이 지금까지 역사적 현실에서 밝혀진 일들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일도 모두 유신헌법으로 통제 권력의 힘보다 우위인 유신헌법을 빌미로 국민을 강제로 통제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헌법은 그래서 그 나라의 정체성을 가장 극명하게 잘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여 통제 권력을 제한하고 권력을 국민에 의해 그 힘이 발생하게 해야 진정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의 詩 「풀」 전문

생권력은 시간이 지나면 죽음 권력이 된다. 생권력은 통제 권력(공권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 국가의 안녕과 질서 유지에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생물학적(선거) 시간을 두지 않고 생권력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 자행되는 일은 모두 불법적이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로막는 일이다. 독재 권력의 표본이 모두 통제 권력보다 상위인 집권의 유지에만 혈안이 되었기 때문에 헌법을 고쳐 국민의 참여를 제한했기 때문에 독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권력이 국민의 민의를 짓누르는 일이 없도록 새로운 헌법이 표출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통제 권력은 법이 허용하는 규정 하에서만 이루어져야 생권력이 죽음 권력이 되었을 때 그 순기능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죽음 권력자들의 불행한 모습을 지켜보며 생물학적 과정의 정치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뒤돌아보았으면 한다. 통제 권력은 국민의 삶에 안녕과 질서를 만드는 데 쓰지 않으면 국민에게는 태풍과 같은 권력의 힘으로 비추어진다는 것을 생권력자들이 잘 생각하였으면 한다. 언제나 국민은 태풍보다 먼저 눕고 태풍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김수영 시인의 풀을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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