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비례대표 국회의원이란 이유 때문에
<비로봉에서>비례대표 국회의원이란 이유 때문에
  • 심규정
  • 승인 2018.08.06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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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예산시즌이다. 정치권은 물론 전국의 자치단체마다 지역사업비 확보를 위해 정부부처를 문이 닳도록 오간다. 곳간 사정이 빈약한 강원도를 비롯한 일선 시·군의 사정은 더더욱 절박하다. 흔히들 예산전쟁은 4단계로 이뤄진다고 한다. 기획재정부에서 예산 가편성을 위해 각 부처 요구예산안(예산기금 총지출 요구액)을 접수 마감하는 6월부터 예산안 심사가 마무리되고 국회통과가 완료되는 11월~12월 2일까지다. 정치권과 자치단체는 이 기간동안 국비확보를 위해 맞춤형 전략을 마련하고 행동에 나선다. 모든 인맥이 총동원 된다. 사활을 건 예산전쟁이 끝나면 성적표가 매겨진다. 국회의원, 자치단체에선 ‘00사업 국비 00억원확보’ 등 홍보를 위한 보도자료 뿌리기에 바쁘다. 시민들도 ‘어떤 국회의원이 예산을 얼마 따왔느니’하며 의원들을 평가한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성과 부풀리기 또는 성과 가로채기의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연출하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는 정치인들이 예산확보에 얼마나 목을 매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내년 예산환경은 녹록지 않다. 복지예산확충에 따른 사회간접자본 예산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자칫 국비지원금이 대폭 삭감, 누락되어 현안사업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아주 상식 밖의 일이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 심기준 국회의원(비례대표)이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예산확보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강원도-강원도국회의원협의회(회장 권성동 국회의원) 현안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연인즉 이렇다. 심 의원은 행사전날 자유한국당 황영철 의원을 통해 “협의회 차기 회장인 같은 당 권성동 의원으로부터 향후 강원지역국회의원협의회는 지역구출신 의원들로만 참여해 운영하기로 결정되었다”는 입장을 전달 받았다고 한다. 심 의원은 앞서 황 의원이 협의회장을 맡고 있을 때 직접 황 의원으로부터 참여를 제안받고 이후 지역현안, 예산간담회 등에도 참석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심 의원은 협의회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유감’이라며 진한 아쉬움을 피력하고 있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는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설움과 함께 더욱 열심히 일하겠다는 오기가 끊어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강원도당 시무처장들까지 참석 대상이었다니, 심 의원으로서는 자존심이 크게 상했을 듯 싶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키워드는 ‘지역구’, ‘비례대표’다. 한국당 측에서는 관행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말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현실을 도외시한 졸장부 같은 처사 때문이다.

왜 그런지 이유를 따져보자. 정치지형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고, 자유한국당은 야당이다. 심 의원이 초선이지만, 정치권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더불어민주당 강원도당 위원장이자, 최고위원까지 역임했다. 국회 47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가운데 유일한 강원도 출신으로 전해졌다. 나름 중앙정치권 인맥이 탄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 의원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는데, 이건 정말 아니다. 자치단체마다 ‘우리 지역 연고의 국회의원과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협조를 받자’는 목표 아래 사돈의 팔촌까지 샅샅이 파악해 노력하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모습이다. 찬밥신세가 된 심 의원의 사례를 접한 시민들은 “배부른 소리들 하네”, “지엽적인 것을 트집잡는다”,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고 일갈했다. 정치권에서 강원도는 변방 취급받은 지 오래다. 인사 때마다, 예산배정 때마다 ‘푸대접’, ‘홀대론’은 언론 타이들의 단골메뉴다. 땅 덩어리만 컸지 인구가 적고, 국회의원 숫자가 적은 이유 때문이다. 강원지역국회의원협의회는 이래서는 안된다. 한 푼이라도 더 예산을 따오기 위해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지역구 의원, 비례대표 의원 운운하는 이분법적 잣대, 정말 한심하고 치졸하기 짝이 없다. 자유한국당의 한 정치인은 이렇게 말했다.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얼굴에 침뱉은 격”이라고 혀를 찼다. 한국당은 아직도 스스로 여당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스케일이 너무 작다. 이런 시대착오적이고 경직된 사고가 체질화된 모습에서 당을 개혁하겠다고 한들 누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나. 좁쌀 같은 처사가 몸에 밴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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