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꼭 살아서 만나야 해
<살며 사랑하며>꼭 살아서 만나야 해
  • 임길자
  • 승인 2018.09.0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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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 <정토마을 원장>

지난해 11월 진달래(가명)님은 정토마을 가족이 되셨다. 뇌경색으로 편마비가 왔는데 오랜 시간 물리치료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의 일상적 활동은 여전히 곤란했다. 신체기능은 물론 시간이 갈수록 언어적 의사소통에도 한계가 나타났다.

36년생이신 진달래님은 올해 83세인데 동갑네기 남편을 만나 65년을 함께 살았다. 남편의 고향은 강원도 횡성군, 진달래님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 역사적 사건에 의해 두 분은 서울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 슬하에 사남매를 두었는데 이제는 모두 출가(결혼)시키고 20년 전에 원주로 내려와 지금까지 몸은 원주사람으로 살고 있다. 진달래님 남편은 매주 정토마을에 오셔서 아내를 만나고, 자연환경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산책도 즐기고 도시락을 준비해서 소풍을 나가시기도 했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아무도 예상할 순 없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두 노부부의 눈빛은 늘 따뜻했고 고요했다.

지난 4월 27일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만남이 성사되고 나서 진달래님 내외는 더 자주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진달래님 남편은 상의할 것이 있다고 나를 찾아오셨다. 어르신은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시더니 말문을 열었다. “내 아내의 고향이 함경남도 함흥이라우. 내 아내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며 가슴에 돌무덤을 쌓고 살았지. 저렇게 병이 들기 전에는 언젠가 고향의 부모 형제들을 만날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놓지 않았어. 그런데 저렇게 몸이 아프고 나서 고향에 대한 말이 없길래 고향생각을 지운 줄 알았어. 근데 얼마 전 우리나라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만나는 걸 보고 나서 나보고 자기 오빠 좀 찾아 달라는 거야. 자기 생각에 오빠는 꼭 살아있을 것 같다는 거지. 그래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약속한대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다면 신청을 좀 해보려고 하는데 원장님이 나를 좀 도와주시오.”라며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를 내미셨다. 서둘러 서류를 작성하고 누워계신 진달래님의 여권사진을 찍어서 서류 제출에 도움을 드렸다.

남편은 아내의 재활치료를 위해 진달래님을 재활병원으로 옮겼고 매일 재활치료를 참견하셨다. 사실 진달래님은 혼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별로 없었다. 휠체어에 오르는 것조차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했고, 식사도 부분수발이 필요할 만큼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함께 꿈꾸고 있는 기대와 바람에 하늘이 힘을 좀 주시는 듯, 진달래님의 거동 상태가 호전을 보이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다.

진달래님은 지난 제21차 남북이산가족 상봉대상 100명중에는 들지 못했다. 기대를 많이 했던 것만큼 서운함도 컸다며 식사를 거부하는 아기같은 아내를 달래느라 힘들었다는 노인! 진달래님의 남편이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원장님! 이번에 만난 가족들 사연을 들어보니 우리는 다음에 만나도 되었겠다 싶었어. 왜냐하면 이번에 만난 분들은 정말 마지막이겠다 싶었거든. 이건 내 생각이지만 다음엔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것 같어. 그래서 아내를 열심히 운동시키려고 해. 그 사람의 평생소원이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는 것인데, 휠체어보다는 지팡이를 짚고 라도 만나게 해 주고 싶어서.... 하하하 노력하면 되겠지?” 라며 미소 짓는 노인의 눈은 어느새 호수가 되었다.

2년 10개월 만에 재계 된 제21차 이산가족상봉이 남긴 의미는 다양하다. 역사적 의미, 사회적 의미, 경제적 의미, 아울러 그 의미가 부여한 가치 또한 매우 중요하게 가슴을 후빈다.

그동안 이런저런 정치적·사회적 오해와 갈등과 억측 속에 이산가족들 가슴팍은 잿더미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습은 70년 세월만큼 얼룩과 주름으로 쭈글거리지만 혈육을 향한 그리움은 그 깊이를 더했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에 대한 의견이 각 층에서 분분하다. 물론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도가 나가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진달래님은 오늘도 쉼 없이 재활치료에 열중하고 있다. 꼭 살아서 만나야 한다고... 그리고 혹시 모를 서신 왕래를 위해 요즘은 편지쓰기도 열심히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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