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우리 엄마 좀 도와주세요”
<살며 사랑하며>“우리 엄마 좀 도와주세요”
  • 임길자
  • 승인 2018.10.22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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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 <정토마을 원장>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변하기 시작했어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언어가 거칠어지고, 행동이 험악해지는 겁니다. 이유를 모르게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물건을 부수고, 방금 먹은 음식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엄마가 치매인가 보다 싶어 말씀을 드렸더니, 당신을 버리려고 한다고 오히려 죽겠다고 난리를 쳐서 혼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최근엔 남의 물건을 집으로 가져오고, 집안에 아이들 물건을 당신 방으로 옮겨놓아 아이들과 다툼이 생기기도 합니다.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도 숟가락 젓가락이 아닌 손으로 음식을 집어 드시는 바람에 함께 밥을 먹던 다른 가족들의 비위를 상하게 한 적도 있어서 엄마에게는 참 많이 미안하지만 요즘은 부득이 밥상을 따로 차립니다. 근래에 들어서는 아무 데서나 대소변을 해결하시는 바람에 집안 공기가 엉망입니다. 그렇게 깔끔하고 알뜰했던 분이 너무나 갑자기 이토록 비인격적으로 변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아무리 질병이라 해도 어쩌면 이래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 엄마 같지 않습니다. 이러면 안 되지만 엄마가 무섭고 미워집니다.... (중략) 저 말고는 의지할 곳이 없는 엄마를 어떻게든 잘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족들 중 누구도 뭐라 하진 않지만 남편 눈치가 보이고, 아이들 눈치도 보네요. 저 자신도 몹시 혼란스런 상황입니다...” 이상은 친정엄마와 함께 살고 있던 딸의 가슴 아픈 사연이다.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가족드라마에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이 등장했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는데, 유독 며느리 앞에서만 이해할 수 없는 난폭한 행동을 했다. 며느리는 자기 남편에게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실 것을 요구했으나 남편은 거절했다. 결국 어르신의 며느리는 집을 나갔다. 물론 며느리가 집을 나간 이유가 시어머니의 이상행동 때문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 남편은 당신 어머니의 이상행동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어머니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 아내를 나무란 것이 결정적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편찮으신 어머니를 병원도 아닌 요양원으로 모신다는 것이 아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한 어머니는 자신의 이상행동에 대해 이성적으로 알고 있고, 오히려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그리고 당신 때문에 아들, 며느리가 불행해 질까 봐 걱정을 하셨다. 그러나 현실은 좀 다르다. 어르신들마다 여러 가지 형태로 다른 증상을 보이는데 드라마처럼 그렇게 이성적이고 예쁜 치매는 그리 흔하지 않다.

우리는 배가 아프면 복통이 왔다 하고, 머리가 아프면 두통이 왔다고 한다. 필자는 치매를 뇌의 통증이라고 말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의사결정 기능을 관리하고 지휘하는 중앙본부가 ‘뇌’라는 건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 뇌에 심각한 통증이 발생하여 의사결정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를 우리는 ‘치매(인지증 장애)’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영양가 좋은 음식을 먹어도 신체기능은 약화시키고,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하고 좋은 환경에서 착한 사람들과 어울려도 떨어지는 지남력을 막지 못한다.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주변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연했던 모든 일상적 취사선택이 곤란해진다. 도저히 혼자 설 수(독립적인 삶) 없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노인을 문제로 인식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1인 단독세대가 늘어나는 반면 출산율은 점점 낮아지고, 사회는 점점 고령화되어가는 반면 생산가능 인구는 감소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의 책임과 의무는 언제부터랄 것도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구를 탓하랴! 혼자가 아님을 믿고 침착하게 주변을 살펴봐야 한다. 앞에 등장한 딸 역시 치매에 걸린 엄마를 다른 사람이 알아 볼까봐 불안했단다. 엄마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 때문에 외출도 외식도 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어떤 이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또 어떤 이는 이미 같은 경험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숨기지 말자. 부모님이 치매를 앓고 계신다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집 밖으로 나와 도움을 청하자. 가족들이 감당하기 곤란한 어르신을 그냥 집에 모셔두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방임일 수도 있고 학대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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