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사필귀정(事必歸正), 그리고 반전(反轉)
<비로봉에서>사필귀정(事必歸正), 그리고 반전(反轉)
  • 심규정
  • 승인 2018.10.22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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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재판을 받고 나오는 피고인이 “사필귀정입니다”라고 외쳤다. 개봉 15일만에 누적 관람객 300만명을 돌파하며 공전의 히트를 이어가고 있는 영화 ‘암수살인’에서 피고인 강태호(주지훈 분)가 던진 말이다.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 앞에서 보무도 당당하게 외쳤다. 그의 표정은 표독스러웠고 마치 개선장군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암수살인은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유령사건을 말한다. 감옥에서 7건의 추가 살인을 개개복초(個個服招) 자백하는 강태호와 그의 자백을 믿고 사건을 쫓는 형사 김형민(김윤석 분)의 이야기를 스펙터클하게 그렸다. 강태호의 자백에 따라 살인현장에서 옷가지, 나일론 끈을 확보한 김형민은 그를 검찰의 지휘에 따라 추가 기소한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이 펼쳐진다. 법정에서 그는 “형사님이 시켜서 자백한 것 아닙니까. 저에게 돈(영치금)까지 주었잖아요”라고 폭탄발언을 해 법정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내가 이런 악마가 된 이유는, 너희처럼 무능한 경찰들이 그때 나를 못 잡았기 때문”이라고 도발하기도 했다. 결국 강태호는 이 부분에 대해 무죄가 됐다.

형민은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찾기 위해 조각난 퍼즐을 맞춰나간다. 피해자의 사체에서 피임기구인 플라스틱 루프가 발견되고 범인이 특정되면서 또다시 반전이 펼쳐진다. 김형민은 강태호처럼 이런 게 사필귀정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그런 무언의 외침이 서려 있는 듯했다. 아주 강하게... 영국 ‘가디언’, ‘인디펜던트’, ‘옵서버’의 칼럼리스트 줄리언 바자니(julian baggini)는 ‘진실사회’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짓은 편리한 사실을 과장하고, 불편한 사실을 묵살하거나 아예 외면해 버리는 불완전한 믿음의 그물망으로 숨어 들어가 진실로 위장한다”라고. “진실은폐는 수렁과 같아서 불의한 세력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부인할수록, 진실을 덮을수록,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라고 말했듯이 어쩌면 강호태의 종말은 이미 예견됐는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졸라는 한술 더 떠 “진실은 행진 중이다. 아무도 이를 멈추게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진실의 얼개를 맞추어 나가는 형민의 집요한 의지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우리는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수사-검찰 기소-법원 선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모두들 듣기 좋은 말로, 사필귀정을 읊조리지만, 종국에 가서는 진짜 진실이거나 진실의 가면을 쓴 거짓이거나 과장된 혹은 편견으로 드러나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단, 이 과정에서 회색지대, 이를 테면 명백하지 않고, 혼란스럽고, 선과 악, 유죄와 무죄, 합리와 비합리, 고의와 우연의 경계가 흐릿한 시간을 보낼 뿐이다. 배우 김부선씨와 스캔들 논란에 휩싸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최근 “저는 사필귀정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몸에 점이 있다는 김부선 측의 주장에 자신은 진실을 말한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다. 김부선이나 이재명 지사 어느 쪽이 과연 사필귀정의 주인공이 될까. 우리는 희뿌연 안개가 잔뜩 끼어 가시거리가 10m에 불과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진실이 거세된, 위조된 사회에서 헤매고 있다. 거짓은 선량한 시민들의 판단을 아주 흐리게 한다. 손바닥으로 진실의 하늘을 가릴 순 없다고 했다.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추려 해도 타자(他者)들은 얼굴선을 보고 그게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거짓의 아우격인 침소봉대(針小棒大)는 탈진실(脫眞實)을 부추기는 괴물이라고 해도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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