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원주란 땅은 그 자체가 보물이다
<김대중 칼럼>원주란 땅은 그 자체가 보물이다
  • 김대중
  • 승인 2018.10.29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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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언론인>

지난 21일 인열왕후 선발대회가 열렸다. 원주문화원이 처음으로 준비했다. 조선 문신 한준겸의 딸로 원주에서 태어나 16대 임금 인조의 왕비가 됐고 효종의 어머니다. 왕비의 땅 원주를 빛나게 하는 왕비 중에 한 명이다, 문화원이 지역 인물을 문화관광 자원으로 만드는 의미 있는 일을 했다. 가치 있는 지역의 문화관광 자원에 불씨를 놓았다.

전국 방방곡곡이 문화관광 상품을 만드는데 난리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자기들만의 문화관광 상품을 내놓고 있다. 기업을 유치해서 지역을 발전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는 데다 소프트파워 문화의 시대가 이미 닥쳤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묵호 논골담길을 갔었다. 요즘 말로 핫 플레이스로 뜬 곳이다. 전국에서 여행객들이 몰려오고 있다. 지난해 40여만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묵호엔 인구 4천여명이 산다. 작은 항구다. 무엇이 사람들을 미치게 했을까. 묵호는 해방전 1940년대 초에 항구가 생겼다. 그리고 1960, 70년대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찾아왔다. 오징어와 명태를 따라 온 것이다. 당시 묵호는 오징어 명태의 집산지였다. 순식간에 손바닥만한 항구 마을은 인구가 2만여명으로 늘었다. 좁은 땅에 사람들이 몰려오자 집 지을 곳을 찾아 항구 뒤 가파른 산에 짓기 시작했다.

워낙 가파르고 좁다 보니 남의 집 지붕을 마당처럼 써야 했을 정도다. 가파른 산을 따라 올라가며 그렇게 다닥다닥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러니 집이라고는 하꼬방 같고 모두 고만고만하다. 집을 들락거리는 길도 좁디좁다. 덩치 큰 어른은 빠져나가기도 어려운 골목도 있다. 찻길을 뺀 나머지 길은 다 그 모양이다. 바닷가 초입새에서 걸어 오르자면 숨이 턱밑까지 찬다.

이런 집들과 골목길을 묶어서 상품화했다. 상품화란 게 별거 아니다. 골목과 집을 묵호 사람들이 고기잡이하고 살던 시절의 이야기로 덮었다. 벽화도 그렇고 작은 덕장 등 그 시절에 살던 모습들을 잘 버무려 놓았다. 일부 커피숍들은 리모델링을 했지만 대부분의 집과 골목은 옛날 그대로다. 물론 거기에 묵호만이 갖고 있는 항구 또한 한몫을 했다. 이렇게 묵호만의 상품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그 상품을 추억하고 희열하고 힐링한다. 몰려드는 이유다. 감천문화마을처럼 거대하지는 않지만 더 아기자기하다. 동해문화원이 2010년부터 묵호를 다시 살리기 위해 추진한 것이 큰 결실을 거두고 있다. 강원도에선 가장 오래오래 핫 플레이스가 될 것이다.

성공의 요인은 골목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살렸기 때문이다. 예술인이나 공방 같은 것은 없지만 진한 삶의 흔적이 속살처럼 남아 있고 볼거리와 맛집, 그리고 항구가 잘 융합됐다. 성공한 골목들의 공통점이다. 그 지역만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콘텐츠들이 잘 융합돼야 한다. 서울의 유명한 골목들은 물론이고 지방의 목포 대구 창원 군산 등등 작은 도시들도 그래서 성공한 것이다. 생뚱맞기 그지없거나 남들이 하는 거 흉내나 내면 실패다. 무엇이나 마찬가지다. 원주는 그런 면에서 참으로 복 받은 땅이다. 멀리까지 가지 않고 근현대만 봐도 인물들이 넘친다. 스토리꺼리가 무궁무진하다. 거기에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원주옻이 있다. 도심 속 골목과 잘 융합하면 사람들 미치게 할 수 있다. 남들 같은 브랜드의 문화관광상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게 이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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