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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이율배반(二律背反)
△ 임길자<정토마을 원장>

얼마 전 국정감사가 끝났다. 이번 국감에서 가장 큰 이슈는 사립유치원 문제였을 것이다. 모든 사립유치원이 불법과 부정으로 얼룩진 회계비리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교육기관 운영자로서 부적절하고 부도덕한 문제가 있었다면 당연히 근절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상은 흑과 백이 나뉘듯 명확하게 구획되지 않는다. 갈등에 따른 현상은 갈등을 빚은 맥락과 역사를 충분히 검토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텐데 현실은 일방통행이 된 듯하다.

물론 사립유치원 스스로 자성이 필요하다.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지표로 점검해야 한다. 또한 부적절하고 부도덕적인 운영행태에 대해 처벌 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립유치원을 대하는 요즘 정부의 행태는 불도저 같은 느낌이 든다. 성숙한 언어가 사라졌다. 이해와 설득은 생명력을 잃었다. 억지와 억측으로 곳곳이 막혀있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허가 및 관리·감독을 담당했던 정부관계자들의 책임은 없는 것인지? 공무원의 고유 영역으로 매년 진행했던 지도점검에서 무엇을 보고, 어디를 단속하고 조치했단 말인지?

국가 운영자들을 위해 우리들이 낸 세금이 영혼없는 이들을 위해 쓰여 진건 아닌지 가슴 한구석이 씁쓸해 진다. 유아교육은 국가 정책적 관점에서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유치원은 교육부 소속이고, 어린이집으로 명칭이 통일된 보육은 보건복지부 소속이다. 유아교육에서 보호와 교육을 분리할 순 없지만, 발생 특성상 유치원은 교육, 어린이집은 보호에 방점이 찍혔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공립유치원은 전국 4,747개이고 사립유치원은 4,282개다. 시설 수에서는 국공립유치원이 사립유치원을 앞섰으나 여전히 대부분의 유아들은 사립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국공립유치원에 다니는 유아는 총 17만 명으로 사립유치원(52만명)의 1/3수준이다.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한 영유아보육법이 1991년 제정된 반면, 유치원을 대상으로 한 유아교육법은 2004년에 제정된 것만 봐도 유치원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한마디로 국내의 유아교육은 20세기 초중반을 거치며 국가가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때 사립유치원에 의존해 지속되어 왔고, 국공립유치원이 설립된 이후에도 사립유치원이 재원 유아의 상당수를 담당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세간에서 성토되고 있는 내용들을 들어보면 여전이 고민이 많지만 한국 유아교육의 질적, 양적 성장에서 사립유치원의 역사는 간과되거나 무시될 수 없다.

국가의 사립유치원 재정 지원이 본격화한 것은 2013년 누리과정 전면 도입 때부터로 기억한다. 이전까지는 국가 재정 지원이 거의 없었으니, 사립유치원 회계 관리도 없었을 것이다. 재정면에서만 보자면 사립유치원은 자영업 같은 개념이었으므로 수입을 어떻게 쓰든 제약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2013년 이후 사립유치원에게 법인을 전제로 한 회계의무를 부과하면서 그 이전까지 제약 없이 이루어지던 지출행위들이 횡령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사립유치원은 개인 투자로 세워졌기 때문에 국공립유치원과 달리 국가적 차원에서 시설에 대한 재정지원은 전혀 없었다. 현 구조의 재정면에서만 보자면 사립유치원은 교육시설이기는 하지만, 교육사업인 셈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 충분히 논의도 고민도 하지 않고 2013년부터 국가는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사립유치원에 국가예산을 투입했다. 정부 재원을 사립기관에 투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세밀히 검토하고, 논의하고, 협의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정책이 진행되었던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개인소유를 주장하는 사립유치원과 국가 재원이 투입된 기관을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정부 사이의 갈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수순인 듯싶다.

11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국가 예산에 대해 시정연설을 했다. “적극적인 재정운용을 통해 경기 둔화의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일자리,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또한 “내년도 예산은 포용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예산이며, 일자리를 통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혁신성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정연설에서 느낀 대통령의 철학은 “사회 안전망과 복지 안에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고,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고 국민 누구라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것으로 필자는 이해했는데... 만추가경(晩秋佳景)이다.

임길자  wjnews01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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