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오호통재(嗚呼痛哉)라, 강원감영이여!
<비로봉에서>오호통재(嗚呼痛哉)라, 강원감영이여!
  • 심규정기자
  • 승인 2018.11.19 0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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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지난 3일. 강원감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복원 준공식이 열리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지난 1995년부터 복원공사에 나서 장장 23년 만에 옛 모습 그대로 재탄생한 것이다. 파란 가을 하늘과 울긋불긋 곱게 물든 단풍이 내려앉은 거리풍경과 함께 고색창연한 강원감영의 모습은 웅장했다. 행사전 미리 도착해 선화당, 후원 등을 둘러봤다. 여기저기서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시설을 살펴보며 ‘조선시대 500년 강원도 최고의 지방통치 행정기구’를 아로새기는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행사가 시작되면서 초라한 분위기에 실망감이 밀물처럼 엄습했다. 빈자리가 많았다. 사회자의 내빈소개 때 눈과 귀를 의심했다. 지역 국회의원 3명은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단, 한국당 김기선 국회의원의 부인만 모습을 보였다. 어찌된 일인지 한국당 시.도의원은 단 한명도 볼 수 없었다.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해도 해도 너무했다. 원창묵 시장을 비롯한 민주당 시.도의원 여럿이 참석했을 뿐이다. 물론 해외출장 중인 일부 인사들은 이해한다. 하지만 나머지 인사들은 만사 제처두고 달려와야 하지 않았을까. 행사 내내 씁쓸할 마음을 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문(自問)해 봤다. 강원감영은 과연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문화재, 역사인식이 이렇게 안이해도 되는 것인지? 곱씹어 봤다.

강원감영은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대단하다. 선화당, 객사, 보도, 행각 등 중심되는 건물이 원래 위치에 온존하게 남아있다. 전국 감영 가운데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라고 학자들은 평가했다. 지금도 강원감영에서는 ‘감원감영 풍류의 달밤’, ‘강원감영 500년과의 대화’, ‘감영사료관’ 운영, 선인들의 일상생활을 체험하는 ‘감영스테이’, 역사를 배우는 ‘감영학교’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강원감영의 상징적 가치를 미리 알아본 원주시 문화재 행정의 발빠른 행보가 타 자치단체에 귀감이 되어 감영복원의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야심차게 전라감영 복원에 나선 전라북도,전주시의 대응방식은 눈여겨 볼만 하다. 전라감영재창조위원회 까지 발족해서 오는 2025년까지 491억 원을 투입, 복원을 완료할 계획이다. 전라감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옛 건물이 하나, 둘 사라지거나 신식 건물로 바뀌다 1951년 화약창고가 폭발해 선화당과 1921년에 지은 건물이 불에 탔다. 1952년 전북도청 건물을 신축해 50여 년 동안 도청사로 쓰이다 2006년 도청사를 서부 신시가지로 이전하면서 지난해 3월 모든 건물 철거와 함께 감영 복원이 추진됐다. 비록 강원감영보다 늦게 복원에 나섰지만, 전라북도, 전주시의 열정은 대단하다. 전북도지사까지 나서 “우리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고, 전라감영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복원해 전북인의 자긍심을 되살리는 일”이라고 선포했다.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똘똘 뭉처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강원감영과 전라감영은 분명 차이가 있다. 전자는 복원이고, 후자는 재현이다. 두 단어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얼마 전 만난 한 문화계 인사는 20년 전 강원감영 복원 시작 당시를 회고하면서 혀를 찼다. “일부에서 세금 낭비 아니냐”,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한다”, “뜬구름 잡는 계획” 등 발언을 접하고 큰 실망감을 가졌다고 한다. 요즘도 “옛 건물 몇 채 가지고 자긍심 운운하는지...”라고 상식 밖의 발언을 하는 일부 시민들을 볼 수 있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강원감영을 빚대 “강원도의 중심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재를 잘 가꾸고 보존해야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후세에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원감영은 원주시민의 자존심이자, 강원문화의 정수다. 누군가 말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과연 우리는 강원감영의 격(格)을 유지하고 높일 자세가 되어 있는가. 지금처럼 강원감영이 과소평가되는 현실에 심한 자괴감이 앞선다. 오호통재라. 오호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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