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남을 돕는다는 건 곧 나를 위한 길’
<살며 사랑하며> ‘남을 돕는다는 건 곧 나를 위한 길’
  • 임길자
  • 승인 2018.12.17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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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길자<정토마을 원장>

공자의 사상에서 ‘인(仁)’은 가장 근간(根幹)이 되는 요소다. ‘어질 인’으로 풀이되는 이 한자는 ‘자애롭다’ 또는 ‘인자하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실제 공자가 전하는 ‘인(仁)’의 참 뜻은 ‘상대를 아름답게 해 주는 것’이었고, 아름답게 해 준다는 것은 곧 상대를 잘되게 도와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누군가에게 천당과 지옥을 직접 체험해 보고 미래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먼저 악마가 지키는 지옥의 문을 열고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밥상 앞에 앉아 있었고 밥상 위에는 고기에서 과일, 채소에 이르기까지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잔뜩 차려져 있었다. 밥상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이상하게도 웃고 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밥상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우울하고 무기력해 보였으며, 하나같이 심하게 야위어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그들은 오른팔에는 수저가, 왼팔에는 젓가락이 묶여 있었는데 손잡이의 길이가 무려 2미터나 됐다. 그래서 음식이 가까이 있어도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천당의 문을 열었다. 천당도 지옥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음식에 사람들의 양 팔에는 길이가 2미터나 되는 수저와 젓가락이 묶여져 있었다. 그러나 천당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은 사뭇 달랐다. 그는 두 곳을 보고 나서 똑같은 상황인데 결과는 왜 다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잠시 후 그가 깨달은 하지만 해답은 이랬다. 지옥 사람들은 그저 어떻게 해서든 자기만 먹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가득한데다 양 팔에 묶여진 수저와 젓가락은 길이까지 2미터나 되니 스스로 음식을 먹는 일은 꿈도 꿀 수가 없었다. 그런데 천당 사람들은 마주앉은 사람들에게 서로 음식을 먹여주며 즐겁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눈에 보여진 천당과 지옥은 환경을 비롯해 밥상 풍경 또한 완전히 같았다. 그러나 한쪽은 지옥, 다른 한쪽은 천당이 되어버린 이유는 양쪽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사고방식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도움을 원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차려 그를 돕는다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도움을 받은 그가 어려움으로부터 안전해 졌다면 자신 역시 무척 고맙고 행복해 질 것이다. 어떤 이는 남을 도울 때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예를 들어 남의 일을 도왔을 때 자신의 체력과 에너지, 그리고 금전과 시간을 낭비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이나 땀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이 해결되고 그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발견한다는 건 그 이상의 엄청난 보상이고 보람이다. 그래서 남을 돕는 일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 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음을 아는 것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오늘을 살면서 어려움 없이, 고통 없이, 갈등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늘을 이만큼이라도 살아갈 수 있는 건, 내가 알게 모르게 어디선가 지켜주고 바라봐 주는 그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근래 들어 기업들이 언제부터인가 상생을 의미하는 ‘윈윈(win,win)효과’를 강조하고 나서는 건 나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돼야만 한다는 세상의 이치에 순응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우리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다 같이 잘 살고 행복해야 한다. 어디서든 혼자만 잘 먹고 사는 사회나 조직은 독재와 불평등을 낳게 마련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개인의 성장은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남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남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진심을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정한 인생의 목표를 향해 나이 숫자만큼 속도를 내며 쉼 없이 달린다. 가장 쉽고 편안하고 의미있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를 돕고 보듬으며 함께 가는 것이다. 즉 ‘남을 돕는다는 것은 곧 나를 위한 길’임을 아는 것이다.

2018 무술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그동안 나라 안과 밖에서 각각의 모양대로 갈등과 고민들이 저물어 가는 해와 함께 떠나주길 바라며, 온기(溫氣)를 담아 2019 기해년을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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