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어머니의 새해 소망
<살며 사랑하며>어머니의 새해 소망
  • 임길자
  • 승인 2018.12.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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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길자<정토마을 원장>

요즘 들어 유난히 기운이 떨어진 목련님(필명을 쓸 수 없어서 필자가 지어드린 어르신의 이름)과 마주앉았다. “목련님! 어디가 불편하세요?” 목련님은 별에 붙은 달력을 바라보며 “올해가 다 갔군. 휴~~”하며 한숨을 깊이 내 쉬었다. 잠시 후 목련님은 오랜 세월 속에 묻어 둔 이야기를 꺼냈다. “난 처녀의 몸으로 아들이 두 명 있는 남자와 결혼을 했지. 처음엔 그도 총각인줄 알았지. 혼인을 하고 첫 아이가 뱃속에 생겼는데 이웃집 아이처럼 남자 애들 둘이 나에게 엄마라며 들어오는 거야. 깜짝 놀랐지. 지금생각해보면 사기 결혼을 한 거지. 그러나 뭘 어쩌겠어. 이미 내 뱃속에도 아이가 생긴 걸... 나도 아이를 세 명이나 낳았어. 그래서 오남매가 되었지. 토지가 꽤 많은 집이었어. 일은 많았지만 돈 걱정은 별로 하지 않고 살았지. 남편에게 몹쓸 병이 생긴 거야. 폐암이래나 ... 남편이 일어나기 힘들어지자 이상한 일이 벌어 진거야. 남편이 소유하고 있던 땅덩어리는 자식들의 땅따먹기 게임장이 되고 말았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숱한 일을 경험했지. 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자식들이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참으로 기가 막혔지.” 목련님은 한참 숨고르기를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충격으로 쓰러졌어.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어. 정신을 차려보니 다섯명의 자식들은 모두 각자가 되어있었어. 그 중 한자식이 나를 책임이지겠다고 해서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내 몸 상태가 이래서 그런지 자꾸 짜증을 내는 거야.... 나름대로는 엄마를 생각한다고 여기저기 많이 알아보고 나서 여길 결정했다고 하던데 처음엔 슬펐지. 그런데 지금은 나도 여기가 좋아.” 목련님의 이야기를 한 참 동안 들으며 생각이 많아졌다. 다시 여쭈었다. “그럼 어르신께서 이곳에 계신 걸 다른 자식들은 모르고 있겠군요,” “아마 그럴거야. 근데 내가 다른 자식들에게 연락을 할 수도 없어. 그럼 또 다른 난리가 일어날까봐...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거야.” 라고 했다.

그 후 3일 뒤 중년의 남녀가 목련님을 찾아 왔다. 목련님의 딸이었다. 딸은 당신의 어머니를 붙잡고 통곡했다. 안 보고 산 세월동안 너무 많이 늙어버린 어머님 모습이 속상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이 대화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드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딸 부부는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곤 감성이 잘 추슬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언어로 친정사를 쏟아 냈다.

증오하는 사람은 멀리하면 되고, 미워하는 사람은 무시하면 그만이고, 의심하는 사람은 피하면 된다. 그런데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끼리는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상대에게 잘못이 있으면 지적하고, 견해차가 있을 때는 공개적으로 논의하여 합의점을 찾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관계이다. 사회조직은 그리하면 되고 그것이 어려우면 자기 스스로 편한 쪽 또는 옳다고 판단되어지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생각하기에 따라 분쟁을 줄일 수 있는 조직이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그렇지 못한 사례를 종종 본다.

묵은 달력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다시 목련님과 마주 앉았다. 그리고 새 달력을 펼쳐놓고 목련님께서 기억해야 하는 날에 빨강색 사인펜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이 해가 떠나면 91세를 맞으시는 목련님은 당신 자식들의 생일을 모두 기억하셨다. 목련님께서 원하는 날짜에 표기를 마치고 모형 마이크를 들이대며 여쭈었다. “목련님! 새해 소망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라고. 목련님은 한참 고개를 떨구고 계시더니 입을 여셨다. “내가 여기 온지 두어 달쯤 되는 것 같은데 이제 두 명이 다녀갔지. 나머지 아이들도 봤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소원을 말하라고 하면 죽기 전에 애들이 한 자리에 앉아 서로 쳐다보며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지. 안 될 래나?...”

2019년 기해년은 황금돼지해라고 한다. 쇼핑코너 곳곳엔 좋은 기운을 가져다준다는 황금돼지 장식품들이 즐비하던데, 잘 생긴 것으로 얼른 하나 준비해서 목련님 머리맡에 놓아드려야 겠다. 목련님의 소원이 이루어 질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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