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섬과 시인
[세상의 자막들] 섬과 시인
  • 임영석
  • 승인 2019.01.22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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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석<시인>
△ 임영석<시인>

섬과 시인은 참으로 공통점이 많다. 섬은 물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고, 시인은 정신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산다. 섬을 찾아 섬에 대한 시만 쓴 시인들이 많지만 그중에 나는 섬에 대한 시로 잘 알려진 시인이 이생진 시인과 신배승 시인을 꼽는다.

이생진 시인의 시 ‘그리운 성산포’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2000년도 초반 ‘그리운 성산포’라는 시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바닷가에 가면 해삼 멍게에 소주 한 잔 마시는 풍경은 유행처럼 쉽게 볼 수 있었다. 삶의 낭만도, 고독도, 외로움도 취해서 모두 사라져 버릴 듯한 그런 마음으로 소주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신배승 시인은 섬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순대 속 같은 세상살이를 핑계로 / 퇴근길이면 술집으로 향한다. / 우리는 늘 하나라고 건배(乾杯)를 하면서도 / 등 기댈 벽조차 없다는 생각으로 / 나는 술잔에 떠 있는 한 개 섬이다. / 술 취해 돌아서는 내 그림자 / 그대 또한 한 개 섬이다.’

신배승의 시 ‘섬’ 또한 장사익 씨가 노래로 만들어 널리 알려진 노래다. 하지만 두 시가 갖는 공통점은 모두 술과 삶이라는 고독을 어쩌지 못하고 가슴 깊이 묻어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생진 시인은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고 했고 신배승 시인은 ‘나는 술잔에 떠 있는 한 개 섬’이라고 말했다.

바다에 떠 있는 섬만 섬이 아니다. 삶 속에도 섬이 무수히 많이 있다. 정년을 넘기고 나이 드신 분들은 빈고(貧苦), 무위고(無爲苦), 고독고(孤獨苦), 병고(病苦)를 잘 이겨내야 한다. 외롭다는 건 그 자체가 세상과 동떨어져 섬이다. 가난하다는 것 역시 외로움을 더 가중 시키는 섬이다. 혼자 있다는 것 또한 세상과 단절된 절벽 위에 서 망망한 섬이다. 이러한 삶의 섬이 그대로 사람의 가슴속에 섬이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고독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 길을 끝없이 걷는 일뿐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일도 그 외로운 길을 끝없이 걷는 일뿐이다. 삶은 자기 자신만이 혼자 극복해 내야 한다. 섬이 끝없는 파도와 싸워 이겨냈듯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그 외로움들과 싸워 이겨내는 일이다.

나는 나의 서재가 하나의 섬이다. 늘 혼자 끝없는 고독과 절망과 시련의 시간을 의자에 앉아 이겨내며 글을 쓴다. 틈틈 파도처럼 밀려오는 다른 시인들의 시집과 책들을 받아 읽으며 외로움을 이겨낸다. 삶이라는 파도가 밀려들 때마다 그 파도가 넘겨주는 책을 읽는다. 섬이 되지 않으면 세상의 책을 읽어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나는 나 스스로 고립의 섬이 되어 살아간다.

무위고(無爲苦)를 이겨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자연마다 각각 다 다르다. 바위는 침묵으로, 시냇물은 낮은 곳을 향해 흐르며, 나무는 하늘을 향해 자라며, 어둠은 별빛을 마음에 앉히며 각각 자기 할 일을 찾는다. 세상이라는 곳에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망망한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같다고 한다. 섬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단절의 상징이다. 절대 고독을 이겨내지 못하면 아름다운 삶의 비경(祕境)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섬과 시인은 공통점이 많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고독은 무위고(無爲苦)를 이겨내는 맑은 소리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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