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흥원창 애사(哀思)
〔비로봉에서〕흥원창 애사(哀思)
  • 심규정
  • 승인 2019.01.28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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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철새들의 만찬장소였다. 남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부론면 흥원창의 풍경이다. 최근 이곳을 찾았다. 수천마리의 철새들이 합수머리에서 일단의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애저녁 즈음 검붉은 주변 풍광과 함께 한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다. 군락을 이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허기진 배를 채우는 듯 보였다. 마치 뷔페음식을 즐기듯. 순간 시곗바늘이 여말선초(麗末鮮初)시대가 오버랩됐다. 한강의 지류인 섬강이 남한강과 합류하는 곳에 위치한 흥원창은 원주와 그 주변의 세곡을 모아 개경의 경창(京倉)으로 운송을 담당했던 한강수계의 대표적 조창(漕倉, 국가에서 운영하는 창고)중 하나다. ‘고려사’(정종)에 따르면 전국 각 조창에 배치할 조운선의 숫자를 정하면서, 흥원창에는 1척 당 2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평저선(平底船) 21척을 두었다고 한다. 당시 뱃길은 지금의 고속도로다. 흥원창을 드나드는 평저선의 규모를 짐작해보면 아마 흥원창은 지금의 교통의 중심지, 원주시의 경제중심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요즘 역사적 장소, 문화유산 관련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모습을 보고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손혜원 국회의원이 전남 목포시 근현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옥을 사들여 투기의혹이 제기되고, 서울시는 재정비 사업에 따라 청계천 일대 을지면옥, 양미옥 등 근대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고개가 갸우뚱했다. 바로 역사적 장소, 문화유산의 격(格)을 곱씹어 봤다. 물론 흥원창은 당시 유물유적이 남아있지 않지만 사료가 그 가치를 웅변하고 있다. 역사적 가치측면에서 목포 근대문화유산이나 서울 재정비 사업에 포함된 냉면가게 보단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소중한 곳이란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원주시도 관광자원 활성화를 위해 흥원창 복원사업을 추진했지만, 무산된 아픈 기억이 있다. 흥호리 일원 32만여㎡에 한옥마을 등 역사문화거리를 재현하는 한편 민속주점, 민속공연장, 안내소 등을 조성하고, 남한강에 평저선 2척을 띄운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원주시의 장밋빛 청사진과는 달리 전문기관의 용역 결과는 암울하게 나왔다. 흥원창의 위치가 정확하게 고증되지 않은데다 한옥마을 등이 남한강으로부터 500m 이상 거리를 둬야하고, 과거 흥원창 모습이 담긴 사료를 찾기 어렵고, 이런 상황에서 복원해봐야 상품가치가 있겠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곳간이 열악한 원주시로서는 국비 지원없이 수백억원을 들여 사업을 진행하기에 큰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도 흥원창은 원주시티투어 5개 코스 가운데 남한강 역사문화길 2개 코스 동선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주요 관광코스다. 인근 법천사지, 거돈사지와 더불어 원주 향토사 스토리텔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격과는 달리 흥원창은 지금 푸대접을 받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주시 홈페이지 문화관광 안내 어디에도 흥원창을 설명하는 곳이 없다. 단지, 시티투어에 코스로만 존재할 뿐이다. 흥원창 주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안내판과 표석만이 흥원창을 알리고 있다. 정자안에는 18세기 정수영이 그린 한임강명승도권(漢臨江名勝圖卷) 중 흥원창(興原倉) 그림 복사본이 빛바랜채 초라하게 걸려있다. 과거의 영화(榮華)는 오간데 없고,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진하게 감돌 뿐이다. 역사성, 지역성, 장소성의 상징이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흥원창을 그물코처럼 100%완전 복원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반장 잣대로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을 안다. 그러나 외래관광객이 자주 찾고, 원주의 역사적 장소인 만큼 당시 위상에 걸맞게 최소한의 분위기라도 풍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역사배움터의 산실’인 흥원창이 물구나무서는 행정의 상징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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