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권위(權威)앞에서 주체적으로 사고 한다는 건?
[살며 사랑하며] 권위(權威)앞에서 주체적으로 사고 한다는 건?
  • 임길자
  • 승인 2019.01.25 1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길자(정토마을 원장)

어느 날 동물의 왕 사자가 다른 많은 동물들 앞에서 다람쥐를 칭찬했다. 사자는 다람쥐가 체구는 작지만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와 견줄 만한 동물이 없다고 말했다. 까마귀나 당나귀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믿지 않았겠지만 사자 대왕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사자의 말 때문에 숲 속의 동물들은 다람쥐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평소 다람쥐를 원수처럼 여기던 동물들까지 찾아와 그간의 묵은 감정은 씻고 친하게 지내자며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지금까지 다람쥐를 무시하고 골탕 먹였던 늑대도 그에 대한 경외심이 생겼다.

심지어 엄마늑대는 자꾸 말 안 들으면 다람쥐에게 이를 거야라며 떼를 쓰는 아기늑대에게 다람쥐의 이름을 들먹이면, 아기늑대는 겁에 질려 순한 양이 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아기 늑대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허기가 진 상태에서 숲속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작은 동물의 움직임을 느꼈다. 아기늑대는 엄마 늑대에게서 배운 사냥기술을 이용해 힘껏 덮쳤다. 나무숲 속에 무방비 상태로 있던 다람쥐는 비명조차 질러보지 못한 채 아기 늑대의 한 끼 식사가 되어버렸다.

다음 날 동물들이 모여 다람쥐가 실종됐다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기 늑대는 그제야 자기가 어젯밤에 잡아먹었던 작은 동물이 다람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기 늑대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임금님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고 말한 어린아이처럼 우연하게 위엄의 가식적인 면을 벗겨냈다.

사람들은 권위자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 그들의 말을 진리처럼 여긴다. 그래서 권위자에게 의지 하게 되고 경외심을 갖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도 사람이기에 부족한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아울러 같은 크기의 단점도 있고 실수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자를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이성적 판단 기준이 흔들리게 되어 주체적인 사고력을 잃게 될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주인공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제자와 숭배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십년을 하루같이 진심으로 나를 따랐고, 나의 학설에 대해 아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너희는 왜 내 머리 위의 화관을 벗겨버리지 않느냐? 왜 나를 따르는 것을 모욕으로 느끼지 않느냐? 나의 화관을 벗겨버리고, 나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나를 사기꾼이라 생각하고 부정할 때, 비로소 너희가 진정으로 나의 학설을 이해한 것이다

그가 남긴 몇 마디에 우리는 그를 위대한 철학자로 기억하며 敬畏心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권위자이면서도 제자들에게 용감히 권위를 타파하고 도전하라고 가르쳤다. 물론 권위를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되며 권위에 도전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모든 권위를 다 부정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권위 앞에서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사고를 하자는 것이다.

우리사회 곳곳에선 권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정의라고 믿는 힘과 원칙라고 여기는 능력이 저마다의 지표에 따라 흔들리다보니 법과 질서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이기심에 담겨 누리는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단했던 과정은 바른 결과를 낳을테니 기대는 희망을 잉태하리라 믿어 보자. 산 너머 또 산일지라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