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원주의 소녀여행자 김금원을 기억하자
[문화칼럼] 원주의 소녀여행자 김금원을 기억하자
  • 전영철
  • 승인 2019.02.11 0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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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철 <상지영서대 교수>
△ 전영철 <상지영서대 교수>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인 1817년 원주에 한 소녀가 태어났으니 김금원이었다. 금원의 아버지는 양반이었으나 어머니는 첩이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부모는 금원에게 유교경전을 비롯한 다양한 책을 보게 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금원이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강하게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이야 여행이 일상화된 세상이지만 200년 전의 세상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여행을 하는 시대는 아니었다. 특히 여성이 여행을 하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였다. 부녀자로 절에 올라가거나 산천에서 놀이를 즐기는 자는 곤장 100대에 처한다는 당시의 경국대전에서 볼수 있듯이 당시 여성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세상이었다. 14세가 되던 해 소녀는 부모를 졸라 약 1개월여의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금강산을 가는 것이었다. 금강산여행은 당시 양반들에게 있어 일종의 버킷리스트 여서 김금원은 어머니를 찾아 온 손님들에게 어깨너머로 금강산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반대하던 부모도 금원의 끈질긴 설득 끝에 허락을 한다. 그리고 갓을 쓰고 남장차림을 하고 여행을 떠나게 된다. 맨 처음의 여행지는 제천의 의림지였다 한다. 의림지로 향하면서 금원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마치 새장에 갇힌 새가 나와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고, 천리마가 굴레를 벗고 천리를 달리는 기분이다”라고 당시를 묘사하였다.

“때는 춘삼월 내 나이 열네 살, 머리를 동자처럼 땋고 수레에 앉았다. 제천의림지를 찾았는데 애교 띤 꽃들은 웃음을 터뜨리려 하고 꽃다운 풀들은 안개 같았다.” 제천의림지 이후 단양8경을 순례하고 동해로 나가 울진의 월송정을 지나 금강산으로 향한다. 장안사, 백운대, 만폭동, 금강문 등 내금강과 외금강, 해금강을 다 둘러보고, “눈 쌓인 언덕 같고, 불상 같고 칼을 든 군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도 같고, 파초 잎과도 같다. 추켜올린 것도 있고 내려뜨린 것도 있고 더러는 가로 같고 더러는 세로 섰으며 일어서 있는 것도 있고 쭈그려 있는 것도 있다,”고 일만 이천 봉을 묘사하였다.

이후 금원은 관동팔경을 유람한 뒤 설악산도 보고 한양의 남산 등을 유람하고 여행을 마무리한다. 한 달 여의 여행을 마치고 금원은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와 1,000km의 여정을 정리한다. “군자는 족한 줄 알고 그칠 수 있기에 절도에 맞고 지나치지 않는다. 소인은 마음 내키는 대로 곧장 행하기 때문에 흘러가 돌아올 줄 모른다. 지금 유람으로 숙원을 이뤘으니 멈출 만하다. 마침내 남장을 벗어버리니 여자가 되었다.”

금원은 이후 열일곱 연상의 김덕희와 결혼을 했고 여행이 끝난 지 20여년 만에 여행기를 남기니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이다. 충청도의 호서지방의 호(湖), 금강산과 관동팔경의 동(東), 평양과 의주 등 관서지방의 서(西), 서울 한양의 락(洛)을 유람한 여행기록 기(記)인 것이다. 이 책은 훗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금강산을 여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였던 스테디 베스트셀러로 필사본이 넘쳤다 한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김금원이 오늘날 이 사회에 주는 은유는 무엇인가? 바로 담장 밖도 내다보지 못했던 여성이라는 한계를 떨치고 넓은 세상과 대화하고 싶었던 여행은 일종의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서울 용산성당 자리의 삼호정에서 여성문인들과 삼호정 시사라는 시동호인 모임을 이끌었다.

200년 전에 원주라는 같은 공간에 살았던 김금원이라는 여성여행자이자 여류문인, 그가 주는 엄청난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은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은 불과 두세 시간 안에 도착할 금강산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살았던 시대보다 못해 가고파도 못가는 금강산의 시대에 살고 있다. 페미니즘, 통일, 도전 등 하루 종일 학교, 학원, 집을 오가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금원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많은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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