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과거에 집착하지 말자
[살며 사랑하며] 과거에 집착하지 말자
  • 임길자
  • 승인 2019.03.18 0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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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길자〈정토마을 원장〉
△ 임길자〈정토마을 원장〉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맞닥뜨리게 되는 자연스런 현상이 늙음이다. 신체적·정서적·정신적 노화는 여러 가지 질병을 동반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현대인들이 가장 어렵고 무섭게 생각하는 질병이 바로 치매다. 아직 현대 의학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질병이므로, 치매 어르신의 삶은 물론 어르신을 돌보는 가족들의 어려움도 크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은 불편한 기억들을 잃은 상태라서 자신의 현재를 고통이라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편안해 보일수도 있다. 그래서 현실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때로는 오히려 행복할 수 있겠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절망에 빠진 한 여자가 자살을 하려고 막 강으로 뛰어 들려고 할 때 한 노인이 그녀를 말리며 물었다.

 

“아가씨! 올해 몇 살이지?”

“스무 살이에요.”

“아가씨! 난 곧 90이 되는데 삶이 즐겁기만 해. 그런데 아가씨는 그 나이에 무슨 고민이 그리 많아?”

“남자 친구랑 헤어졌어요. 전 정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할아버지는 아마 이해 못 하실거예요.”

노인은 울고 있는 그녀를 타이르며 말했다.

“내가 왜 몰라? 나도 아가씨만 할 때는 사랑 때문에 죽을 결심까지 했던 적이 있었지. 그땐 나도 아가씨처럼 이별의 아픔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 나는 무척 행복해. 아가씨가 보기엔 내가 행복해 보이지 않아? 이제는 그때 나를 버린 그녀가 누군지 생각이 않나. 하하하”

여자는 많이 진정됐는지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그럼 할아버지는 그분을 언제쯤 완전히 잊게 되었나요? 그리고 언제쯤 가슴이 아프지 않게 되었나요?”

노인은 한참 생각하더니 추억에 잠긴 듯 말했다.

“음~ 재작년 겨울쯤일 거야.”

노인이 말을 마쳤을 때는 ‘풍덩’하는 소기만 들려올 뿐 이미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별의 슬픔을 잊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깨달음이 있다. 그것은 바로 때로는 잊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사실이다. 여자가 이 점을 깨달았다면 그렇게 쉽게 삶을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동물이다. 과거를 추억하고 그 추억에 잠겨 너무나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과거를 바꾸지 못하고 과거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몸은 현재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과거라는 울타리의 빗장이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과거’라는 집채 안에는 울고 웃는 여러 얼굴들이 당시(當時)를 표현하고 있다.

억지로 기억해하고 싶은 자기 얼굴도, 억지로 지우고 싶은 사연들도 이미 지난 일이다. 돌아갈 수 없는 당시(當時)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미리 연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과거는 좋은 기억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두고, 아픈 기억들은 지금 이 순간 오늘살기 위한 마중물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오늘은 이미 떠난 그 누군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날 이었으니...

경계, 박노해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

현실이 미래를 잡아먹지 말 것

미래를 말하며 과거를 묻어버리거나

미래를 내 세워 오늘 할 일을 흐리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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