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이제 용서하고 용서받자
[세상의 자막들] 이제 용서하고 용서받자
  • 임영석
  • 승인 2019.04.01 0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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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석<시인>
△ 임영석<시인>

용서(容恕)라는 말은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줌.' 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 번, 남의 잘못이나 나의 잘못에 대하여 눈 감고 덮어주고 살아간다. 그 모든 용서의 마음을 스스로 자기 자신도 모르게 묵인하면서 세상을 살아간다.

무엇을 그리 많이 용서하였는지 모를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마르다고 마시는 물, 내 것이 아닌 물이다. 어제 먹은 음식이 소화가 되어 화장실 오고 가며 배설하는 똥, 오줌, 이 또한 내가 세상을 더럽히는 죄이다. 부모나 형제, 아래로는 자식이나 손자 손녀가 있다면 이들이 먹고사는 모든 일들의 행동이 내 죄일 것이다.

내 가정을 벗어나 출근을 하면서부터 모든 일들이 죄가 된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합법화된 합리화된 죄들이다. 정치인은 정치를 통해 세상을 더럽히고, 장사꾼은 장사를 통해 세상을 더럽히고,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을 통해 세상을 더럽히며. 종교인은 종교적 믿음을 통해 세상을 더럽힌다. 교육자가 바르게 교육하였다면 세상에 죄지은 사람이 없을 것이며, 공무원이 공무 수행을 바르게 운영했다면 세상이 어지럽지 않을 것이다. 그 모두가 자기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의 잘못을 용서해서 발생된 일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소크라테스가 자기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의 죄를 받아들이며 세상을 향해 던진 말이다.

어느 누구의 탓이라 덮을 수 없다. 모두가 스스로 지은 양심의 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이 바르지 않다고 생각해야 한다. 산의 나무가 바르게 자라지 않은 것은 그 산을 지나가는 바람의 탓만이 아니다. 새가 와 울고 간 탓도 있을 것이고, 끝없이 그리움을 남기고 간 물소리 탓도 있을 것이며, 세상이 이렇게 자유롭다고 떠다니는 흰 구름 탓도 있을 것이고, 해와 달, 별빛이 아름답게 비추어 그 아름다운 방향을 향해 가지를 뻗게 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바르지 않은 나무를 탓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언젠가 어느 종교 단체에서 '모두 다 내 탓이오'라고 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세상에 죄지은 자 없고, 죄짓지 않은 자 없다는 자기반성에 대한 침묵의 항거라 생각하며 캠페인을 벌였다고 본다. 스스로를 되물어 본다. 나는 어디까지 나를 용서해야 하는가? 내 잘못에 대하여 나는 어디까지 용서를 해 보았는지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세상은 끊임없이 과거에 대한 죄를 단절해야 한다고 항변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식민에 대한 자기반성의 용서를 해야 하고, 군사정권의 실세들은 그 기간에 벌였던 죄에 대하여 용서를 해야 한다고 하고,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받고 인권을 침해한 비도덕적 행동을 한 기업인들도 용서를 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지식인과 종교인 모두는 선각자로서 세상의 암흑기에 그 암흑의 굴레를 그대로 묵인한 양심에 대하여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용서란 토끼가 먹고살기 위해 풀을 뜯어 먹는 일부터 시작하여 호랑이가 그 토끼를 잡아먹는 일까지의 모든 행동에서 벌어진 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 죄를 품어주는 마음이 용서다. 그러니 풀을 뜯어 먹은 토끼나, 토끼를 잡아먹은 호랑이나 그 용서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아야 한다. 때가 늦으면 용서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를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할 때이다. 토끼로 살았건, 호랑이로 살았건, 세상을 살며 지은 죄를 용서하지 않고 용서 받지 않으면 영원히 불행한 삶을 자초할 것이다.

이제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한다. 좌측의 팔이 잘못한 부분이나 우측의 팔이 잘못한 부분, 모두 내 몸에서 이루어진 죄들이다. 우측에서 좌측의 손을 헐뜯고, 좌측에서 우측의 손을 언제까지 헐뜯으며 살 것인가. 우리가 사는 세상 이제는 용서하며 그 잘못을 녹여내고 끓여내는 커다란 삶의 가마솥이 필요하다. 내 작은 행동 하나하나 그늘이 되어 꽃피는 마음을 방해했다면 내 행동부터 잘못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용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용서하며 살아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생각한다. 용서를 해야 할 사람, 받아야 할 사람, 각각 토끼나 호랑이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용서를 하고, 용서를 해 주는 세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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