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잡목이 산의 길을 막는다
[세상의 자막들] 잡목이 산의 길을 막는다
  • 임영석
  • 승인 2019.04.28 2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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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석<시인>
△ 임영석<시인>

세상을 그리 많이 살지 않은 나이인데 벌써 희망퇴직을 하고 삶을 뒤돌아보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젊은 청춘이 불화살처럼 지나가버렸다. 서너 평 서재에서 글 쓰고 책 읽고 지옥과 천당을 함께 구비해 놓고 살다 보니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든다. 요즘 세상을 보면 산은 푸르른 데 잡목만 우거져 불 한 번 번지면 이도 저도 끄지 못하고 훌훌 다 타버리는 그런 모습으로 변해 있다는 생각이다. 세상의 큰 나무들이 잡목들에게 가로막혀 찾아가는 길이 없어져 그 그늘이 늘 아쉬울 뿐이다.

호랑이가 살았다는 산들의 산맥마다 이미 호랑이들은 오래전 사라지고 고라니와 멧돼지 초식성이나 잡식성 동물들만 살아가고 있다. 산은 푸른 데 잡목이 우거져 오도 가도 못하는 산이 되어 가고 있다. 탐방로가 아니면 다녀서는 안 되는 산이 되어 가고 있다. 세상도 흡사 푸르른 산을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산은 푸르른 데 정작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제한적으로 나 있듯이 젊은이들이 살아갈 세상의 길이 잡목이 우거져 앞이 정상이 안 보이고 헤쳐 나갈 수 없는 산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잡목이 없을 때는 정상을 오르는 길이 보여 힘들고 고되어도 앞만 보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 앞에 다 막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프랑스는 노란 조끼 투쟁으로 빈부격차의 투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우리도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던 경험이 있다. 이제 민주주의 그다음은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삶의 질이 향상되어야 프랑스와 같은 노란 조끼의 투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자연재해라 치부하는 산불 경험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푸르른 숲으로 있을 때는 병충해만 관리해 주고 가지치기만 잘 해 주면 푸른 숲이 유지된다. 하지만 산불이 나서 다 타버린 산은 나무를 다시 심고 나무가 자라게 가꾸는 데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어야 숲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 문제도 이 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전에 충분히 검토되고 계획을 세워 방지를 안 하면 프랑스의 노란 조끼 투쟁과 같이 사회적 갈등이 예방되지 않는다. 대책을 세우지 않고 방치를 한다면 산 전체가 다 타버리고 다시 나무를 심고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투자해도 그 치유가 힘들게 되어 있다.

최저임금이나 노동시간 단축 같은 문제를 두고 경제계는 자신들의 입장만 내세우는 데, 정말 빈부격차의 불이 사회적 문제로 불붙으면 최저임금, 노동시간 같은 문제가 근본이 되지 않고, 경제계가 추구하는 이익 창출은 물론, 세상이 다 마비가 되어 사회 전반이 다 멈추어 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프랑스의 노란 조끼 투쟁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때다. 말 그대로 산은 푸른 데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은 잡목으로 가로막혀 사람이 갈수 있는 길은 탐방로뿐이다. 그러니 사회 전반 곳곳이 정체가 일어나고 젊은이들이 살길을 못 찾고 있는 것이다. 지금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방치하면 그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왜 호랑이들이 이 산맥의 청산을 떠나야 했는지 생각해야 할 때이다. 호랑이를 다 잡아먹으면 덤벼들 짐승이 없을 것 같지만 멧돼지 고라니 같은 짐승들이 농작물을 더 많이 훼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 기나긴 죽음의 시절, /

꿈도 없이 누웠다가 / 이 새벽안개 속에 / 떠났다고 대답하라. /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 흙먼지 재를 쓰고 / 머리 풀고 땅을 쳐 / 나 이미 큰 강 건너 / 떠났다고 대답하라. 〉

-양성우 詩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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