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치악산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비로봉에서〕“치악산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 심규정
  • 승인 2019.04.2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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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발행인.편집인〕
△심규정〔발행인.편집인〕

미세먼지가 일상이 된 요즘. 뭉게구름은 물론 에머랄드 빛 하늘을 보는 날이 손으로 꼽을 정도다. 소중한 우리 삶의 공간이 회색세계에 포위된 느낌이다. 세상이 괴괴하기 이를 데 없다고나 할까. 갑갑하기도 하고, 가슴속으로 미세먼지가 파고든 것 처럼 웬지  눅눅한 기분이 앞선다. 앞으로 집 창문을 활쩍 열어 제치고 살기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민들은 뇌에 미세먼지 측정기를 장착한 듯하다. 치악산이 ‘보이냐', ’안 보이냐’에 따라 “심하네”, “쾌청(快晴)하네”라고 자동반사신경으로 오염농도 예측시스템이 발동되고 있는 듯하다.

미증유의 미세먼지가 온 세상을 덮치면서 온갖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미세먼지 예산 수천억원을 정부 추경에 편성했다느니,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지만)경유차를 감축하고 전기차·수소차 공급을 확대하겠다느니, 도시숲을 조성하겠다느니,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우리 사회 최대 현안인 만큼 고민의 흔적들도 켜켜이 쌓여있다. 논란이 크게 일었던 정부 차원의 인공강우, 대형 공기정화기 설치는 기술적, 관리적 측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여주기식 대책이란 학계의 지적이 나왔다. 비근한 예로 원주시가 최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더(#) 깨끗한 원주 만들기'도 사실 미세먼지 감축 대책의 일환이다. ‘우리 일상에서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자’는 이런 대시민 운동은 물론 계속돼야 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눈에 보이는 ‘반짝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미세먼지 농도를 획기적으로 낮추기에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래저래 중앙·지방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지역, 국가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 대 국가, 즉 글로벌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다 국가 간 이해관계도 복잡해 말 그대로 난형난제다. 우리가 손 댈수 없는 오염원이 바람의 방향에 따라 하늘을 통해 자유자재로 이곳 저곳 넘나드니,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도 애매한 구석이 많다. 아마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미완의 과제가 될 것 같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지역의 한 유력인사로부터 미세먼지 저감대책을 전해듣고 귀가 솔깃했다. “원주시처럼 사방이 산으로 꽉 막힌 도시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미세먼지가 정체되는 지형적 특성이 있다”며 “바람길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함께 있던 다른 참석자들은 신선한 제안에 모두 공감하는 눈치였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로부터 며칠 뒤 국토연구원은 ‘신선한 바람을 도시로 끌어들이자’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미 미국, 독일에서 성공사례가 소개돼 이론의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업을 펼치기엔 긴 인내 과정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복잡다단한 법적 근거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바람길을 감안해 건물구조를 배치해야 하므로, 상위법은 물론 자치단체의 조례까지 뒷받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어린시절 과연 지금 같은 환경재앙이 닥칠지, 누군들 알았겠는가. 재앙은 예고 없이 닥친다고 했다.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피해 범위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제 거시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앞으로 도시 공간 구조를 고려한 건물배치, 그리고 치악산·백운산·덕가산·명봉산 등 주요 산의 신선한 바람을 도심으로 흐르게 할 수 있는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도로이동오염원도 고민해야 한다. 원주시를 관통하는 중앙·영동·광주~원주 등 3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에서 발생하는 황산화물 등 도로오염원이 어느 지역보다 많이 배출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오염원이 바람을 타고 쉽게 빠져 나갈 수 있도록 보다 근본적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기인지우(杞人之憂 )같지만, 지금처럼 임시방편의 대책이 계속된다면 ‘삶은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과 매한가지가 될 것이다. 자칫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 이런 우려가 기우가 됐으면 좋겠다. 당장 눈앞의 성과보다 호흡을 길게 하고 먼 훗날, 우리 후손을 위해 차근차근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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