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연등(燃燈)을 바라보며
[세상의 자막들] 연등(燃燈)을 바라보며
  • 임영석
  • 승인 2019.05.13 0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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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석<시인>
△ 임영석<시인>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곳에는 깨달음의 이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이 깊지 않은 나는 도무지 그 이치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만사가 뒤처지고 모자라고 흉만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35년 글을 함께 쓴 많은 동료들은 나름 글로 일가를 이루고 문단 말석의 위치에 있지만 능력이 모자란 나는 어둠 속의 별빛 같은 희망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다.

좋은 글이야 천둥번개 내리치는 먹구름을 내 가슴에 지니지 못해 못 쓰는 것이고, 남 앞에 나서서 주변머리라도 헤아릴 줄 아는 재주라도 있으면 문단의 말석 자리 하나라도 끼어들 것인데, 그런 재주도 없다. 사실 이러한 마음 자체를 갖는 것도 내 욕심이고 내 허물을 드러내는 일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다니지도 않은 절에 가서 남들이 달아 놓은 연등을 본다. 수많은 연등의 꼬리마다 누구누구 가족 건강하고 무탈하게 해 달라는 글들을 보며, 얼마나 마음속의 어둠이 많았는지를 바라본다. 자기 자신의 마음의 등을 덩그렇게 달아놓고 소망을 빌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이 등조차 달 수 없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연등은 “등잔에 빛을 사르다”라는 뜻이다. 등잔의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연꽃의 모양을 만들어 바람을 막아주는 것이 연등이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어두운 세상의 길을 밝혀준 부처님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뜻도 담겼으리라. 요즘은 등불보다 더 밝고 편리한 전등들이 많이 있다. 그러니 등불은 상징적 의미로 걸어 둘뿐이다.

등불은 전기가 없던 시절, 밤길을 밝히는 생활 도구였다. 연등은 그 등불에 연꽃의 모양을 씌워 자비로운 마음을 바라보고 그 연등처럼 세상의 어두운 곳에 작은 불빛이 되어 살아가는 마음을 담아 놓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니 연등을 보면서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와 자비를 베풀던 깊은 마음을 되새겨보게 된다.

백수 정완영 선생은 「창포 꽃 있는 못물」이란 시에 5월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 돌 한 개 던져볼까 / 아니야 그만 둘래 / 바람 한 번 불러볼까 / 물잠자리 잠을 갤라 / 창포 꽃 포오란 생각이 / 오월 못물을 열고 섰다. 〉

사람 마음도 물과 같을 것이다. 돌을 던지면 파문이 일고 그 파문에 놀란 물잠자리 날아갈 것이다. 그래서 창포 꽃 포오란 생각이 못물의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연등도 우리들 마음에 오월 못물 같은 자리에 창포 꽃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담아주고 있다고 본다.

자비는 내가 아름답고 행복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더 보탠다면 선한 마음을 쌓는 적선의 마음을 연등 불빛처럼 쌓고 쌓아 세상의 어둠을 밝혔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매일 숨 쉬고, 보고, 생각하도록 세상을 만들어주신 분이 있을 터이다. 나는 연등을 바라보며 나에게 매일 맑은 햇빛과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아름다운 생각들, 그리고 내 가족, 착한 이웃들을 두고 살아갈 수 있게 한 분이 연등 불빛이라 생각한다.

참기름이 고소한 것은 뜨거운 불에 깨알을 볶고, 볶아진 깨를 압착하여 그 고통의 향기를 쏟아내기 때문에 고소한 맛을 낸다고 본다. 연등을 바라보니 참기름이 고소한 이유와 연등의 불빛이 아름다운 이유가 다 자기 자신의 고통을 이겨낸 결과라는 것이다. 5월은 세상 곳곳이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어 있다. 나무며 풀 모두가 제 나름의 연등 불빛으로 세상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자연의 연등 불빛을 보는 내 눈이 즐겁다. 모두가 그 연등 불빛을 마음껏 바라보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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