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왕국의 클래식 이야기 (92) 쇼팽 즉흥환상곡
최왕국의 클래식 이야기 (92) 쇼팽 즉흥환상곡
  • 최왕국
  • 승인 2019.06.0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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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왕국<작곡가/원주고, 한양음대>
최왕국<작곡가/원주고, 한양음대>

즉흥곡이라고 하면 공연장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곡의 전체적인 구도나 형식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은 곡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다른 곡들에 비하여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자유롭게 쓰여진 곡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일반적으로 작곡을 할 때는 정형화된 형식에 어느 정도 맞춰야 하고, 곡을 쓰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들여 구상도 하고, 세부적인 내용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하지만 즉흥곡은 그러한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작곡자의 흥(느낌)과 감정 등을 자유롭게 곡으로 나타낸다.

그렇다고 해서 즉흥곡이 아무런 규칙도 일관성도 없이 무분별하게 쓰여지는 것은 아니다. 바로크 시대와 고전파 낭만파 시절 유럽의 작곡가들은 보통 엄격한 “도제식 교육”을 받았으며, 꼭 도제식 교육이 아니더라도 요즘 유행하는 말로 엄청나게 빡쎈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비록 형식에 구속받지 않고 작곡을 하더라도 온몸으로 체득한 정형화된 형식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배어 나오게 되어 있다.

여기서 “도제식 교육”이란 슈만과 브람스처럼 선생님 댁에 기거하면서 수시로 지도를 받으며 때로는 선생님의 작업을 보조하는 형태의 일대일 교육을 말한다. 굳이 쇼팽이 그러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 시절 유럽의 예능 교육 방식이 그 정도로 집약적이었다는 의미다.

쇼팽은 총 4곡의 즉흥곡을 남겼는데, 그 중 가장 먼저 작곡되어진 곡이 바로 오늘 소개할 “즉흥환상곡(Fantaisie-impromptu in C# Minor Op. 66)”이다. 이 곡은 그가 24살때인 1834년에 파리에서 작곡되었으며, 쇼팽과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던 작가 “조르쥬 상드”와의 화해를 자축하는 의미로 쓰여졌다는 설도 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쇼팽은 이 곡을 특별히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에 항상 가지고 다니며 남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출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한 연유로 즉흥곡 중 가장 먼저 작곡된 이 곡이 작품번호로는 맨끝의 곡이 된다.

자신 이외에는 이 곡을 연주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랬는지 이 곡을 자신의 품속에 꽁꽁 숨겨놓고 다니던 쇼팽은 이 곡을 출판도 하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쇼팽의 죽음과 함께 잊혀질 뻔했던 이 곡은 그의 친구 폰타나가 악보를 발견하여 출판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즉흥(Impromptu)라는 단어 앞에 “환상(Fantasie)”이라는 제목을 추가하였다.

사실 “즉흥곡“이나 ”환상곡“이나 어느 정도의 즉흥적인 성향을 띈 곡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지만, 쇼팽의 ”즉흥 환상곡“은 이러한 두 단어의 뜻이 화학적 결합을 한 일종의 합성어라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환상적“인 요소가 포함된 ”즉흥곡“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곡은 A-B-A’-종결구의 형태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3부 형식의 피아노곡이다. 앞서 말 한 바와 같이 아무리 즉흥곡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형식미는 가지고 있다.

A 부분은 빠르고 화려하며 격정적인 분위기다. 이 부분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4:3의 리듬이다. 즉 오른손이 16분음표 4개를 연주할 때 왼손은 8분음표의 3연음부를 연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4:3의 리듬이 서로 부딪히면서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B부분은 매우 부드럽고 고요하며 따뜻한 장조의 선율이 나온다. A 부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이렇게 서정적인 멜로디가 나온 후 A‘ 부분이 등장하여 더욱 격정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게 되는데, 이러한 대조가 바로 이 곡의 매력이다. A’ 부분 이후에는 종결구가 나오는데, 이 종결구에는 A 부분의 멜로디와 B 부분의 멜로디도 다시 등장하여 청취자들에게 일종의 “각인”효과를 주게 된다.

대학시절 사사건건 티격태격 싸우던 같은 과 여동기가 있었는데, 어느날 연습실에서 이 곡을 너무너무 열심히 연습하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니가 백날 연습해 봐라. 잘 되겠냐?”라고 비웃었는데, 꾸준한 연습으로 연주 실력과 표현력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그 노력에 감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게으르고 교만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하는 추억의 음악이다.

https://youtu.be/14JlhhwoKKQ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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