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욕심을 비우면 말이 고와진다.
[살며 사랑하며] 욕심을 비우면 말이 고와진다.
  • 임길자
  • 승인 2019.06.23 2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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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길자〈정토마을 원장〉
△ 임길자〈정토마을 원장〉

얼마 전 원주성불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성불원은 도심에서 사찰기능을 하는 포교당(포교당(布敎堂 : 주로 불교에서 대중을 상대로 교법을 널리 펴는 일을 하는 집)이다. 성불원에는 기거(起居)하는 스님도 계시고 수시로 이런 저런 행사들이 있어서 주방을 담당하는 공양보살(공양(供養:포교당에서 주방을 담당하는 여자))이 있다. 어느 날 공양보살이 아침에 출근을 해 보니 주방 바닥은 엉망진창이 된 채 밥통이 텅 비어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법당을 둘러보고 주지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 어젯밤에 성불원에 도둑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법당에선 도둑이 가져갈 것이 없었나 봅니다. 근데 주방은 엉망이었습니다. 밥통은 텅텅 비어있고, 바닥엔 밥풀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야간에는 법당 문을 잠가야 할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을 올렸다.

스님께선 공양보살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더니 웃으시면서 “보살님께서 많이 놀라겠군요. 그런데 오늘부터는 밥도 좀 충분히 지어놓고 국이랑 반찬도 준비해 두고 퇴근하세요. 절에 왔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가면 서운하지 않겠어요? 밥이라도 먹고 가게 해 주세요. 보살님의 걱정은 알지만 그렇다고 법당 문을 잠그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닌 듯싶습니다. 물론 말없이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몹시 나쁜 행위입니다. 직접 발견하게 되면 즉시 신고해야 하고, 당연히 벌 받게 해야 할 일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내어 줍시다. 어떤 이유로 법당에 왔든 밥이라도 배불리 먹고 가게 합시다.”라고 말씀하셨다.

며칠 전 라디오를 통해 듣게 된 사연이다. 저소득층 주민들이 모여 사는 어느 도시의 한 종교시설에는 매월 1일이 되면 시설 밖에 쌀통을 준비해 놓고 필요한 사람들이 무료로 퍼가도록 했다. 처음엔 ‘깨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사실 주변사람들의 반응과 마찬가지로 결과에 대해 회의적(懷疑的)인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해당 종교시설을 방문하는 지인들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냥 나눠주는 것이 낳지, 쌀통을 놓아두면 그것에 남아나겠습니까?’라며 부정적인 시각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신심(信心)을 믿으며 용기를 냈다. 그러나 결과는 매우 낙관적(樂觀的)이었다. 얼마간은 계속해서 쌀독을 채워놔야 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의 약속인지라 쌀이 떨어지지 않도록 수시로 살피며 챙겼다. 그런데 횟수가 거듭될수록 채워야 할 쌀의 양이 줄어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쌀통이 밖으로 나오는 날이면 누군가가 미리 쌀자루를 갖다놓기도 하고, 쌀을 퍼 감으로 인해 비워지는 만큼을 그 누군가는 또 채워놓더라는 것이다. 누가, 언제, 어떤 마음을, 어디에 내 놓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는 달라진다. 누가 더 베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갖은자가 알고 있어야 한다.

모든 인간관계는 비우지 못해 파열음이 일어난다. 비워야 자신이 바로 보이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만을 옳다고 고집하는 한 성장과 공생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 정치권에 막말이 도를 넘고 있다. 말끝마다 ‘국민들의 뜻! 국민들의 요구“ 등을 운운하며 국민들을 팔아먹고 있는데

그건 사기인 듯싶다. 국민들이 언제 그런 입법부를 원했는지? 국민들의 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인 적이 있기는 했는지? 정치인은 국민이 만들어 준 무대 위에선 사람들이다. 그들이 온 마음을 다해 감동을 주어야 할 관객은 국민들이다. 일그러진 언어와 행동은 상처만 낳을 뿐이다. 비우면 말이 고와진다. 말이 고와지면 꼬인 정국이 순리대로 풀릴 것이다. 당리당략에서 비롯된 욕심을 비우게 되면 그 자리에 국민들이 자리하게 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정치는 온 국민이 사랑하고 의지하는 예술이 된다.

신심(信心)있는 한 종교인의 소소한 마음 냄이 세상을 온유하게 만들었고, 한 젊은 영화감독 의 성숙한 몸짓이 세계 속 중심에 대한민국을 있게 했고, 아직은 어린 20세이하 축구선수들의 아낌없는 몸부림에 온 국민들은 “내가 지금 여기에 살아 있음”을 고맙고 감사해 했다.

녹음이 짙게 우거진 6월! 무산스님의 글을 옮긴다.

『비움은 참 좋은 것이다.

비움은 곧 아름다운 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을 봐라.

그 간격은 나무가 스스로를 비운 자리다.

그 간격이 있어 나무는 함께 성장하고 숲을 이룬다.

잔잔한 바람이 부는 날

숲들의 합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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