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마당이 있는 집
[세상의 자막들] 마당이 있는 집
  • 임영석
  • 승인 2019.06.18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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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석<시인>
△ 임영석<시인>

요즘 세상은 폐쇄적이고 개인의 주거 공간이 남에게 노출이 잘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어떤 일을 하고 살아가는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숨겨져 있다. 그러나 농경사회의 거주문화에서는 사립문이라는 게 있고 마당이 있고 초가집 또는 기와집이 있어 그 집안의 살림살이가 어떠한지를 대충 오고 가며 짐작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 집 굴뚝에 연기는 나는지, 그 집 마당 빨랫줄에 빨래는 널려 있는지, 그 집 사립문은 꼭꼭 닫혀 있는지 열려 있는지, 마당가 한 모퉁이 채송화 봉선화는 피고 있는지 등등을 어깨너머 훔쳐보듯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집들의 구조 속에서는 옆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 몇 년 전 글을 쓰던 한 젊은 작가가 끼니도 해결할 수 없어 죽어간 일이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된 일이 있다. 그래서 예술인 복지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궁핍을 밖으로 들어내는 예술인은 그리 많지 않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서른 살의 잔치는 끝났다⌟로 베스트셀러 시인인 최영미 시인도 생활보호 대상자였던 사실이 밝혀졌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지 밥은 먹고 있는지 병에 걸려 사는지 알 수 없는 사각지대의 사람이 수없이 있을 것이다.

1인 가구 시대가 늘어나고 젊은 층도 독립해 혼자 살아가다 보니 생활고는 비단 나이 드시고 연로한 노인만 있는 게 아니다. 젊은 빈곤층이 늘어나고 최종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어 자살이 높아지고 있다고 본다.

농경사회의 주거 공간처럼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아간다면 서로가 십시일반 어떻게든 끼니는 굶지 않게 도와줄 것이고, 아픈 노모를 돌보는 일도 마음을 다 함께 주어 거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폐쇄적이고 넘겨볼 수 없는 주거 공간에 각자 살다 보니 생활고에 시달리고 병고에 시달리는지 마음을 바라볼 여력이 사라져 가고 있다.

다음의 동시는 곽해룡 시인이 쓴 동시 ⌜할머니⌟라는 작품이다.

〈할머니 마실 다녀오시네 // 낙타처럼 등 내밀고 / 햇볕 한 짐 태우고 오시네 //

할머니 굽은 등 펴시네 // 와르르 햇볕 쏟아져 / 우리 집 마당 눈이 부시네〉

등 굽으신 할머니가 마실을 갔다가 오시며 등에 한 짐 햇살을 지고 오셔서 마당에 허리를 펴 부리면 환한 마당이 된다는 것이다. 마당이 있기 때문에 바라보는 삶의 풍경이다. 마당이 없다면 굽은 등 이끌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과거의 생활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내 이웃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러니 윗집 아이가 놀며 뛰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신고를 하고 짜증을 내고 서로 민원을 호소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생활고와 병고로 죽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때문에 아파트와 같이 집단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 마당이 있는 집처럼 이웃과 이웃이 얼굴을 마주 보는 주거환경이 절실히 필요해져 가는 있다. 주거환경이 폐쇄적으로 바뀌면서 사람의 마음도 폐쇄적이어서 남에게 노출을 꺼리는 심리적 삶을 살아가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지는 않는지 고민을 해 보아야 할 때다.

하늘의 별처럼 멀리 빛나는 아름다움도 알고 가까이 흔들리는 빨랫줄의 빨래 그림자 같은 이웃의 설렘이 가슴속에 있다면 그 마음들이 다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삶의 마당이 없다 보니 하늘의 별이 아름답게 떠 있는지, 옆집 아이의 맑은 눈빛을 바라보는 일이 사라지고 있다. 때문에 층간 소음의 민원이 이해심 부족과 개인의 폐쇄적 이기심에서 날로 늘어난다고 본다. 이제라도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에 서로가 함께 쓸 수 있는 마당과 같은 삶의 공간을 만들어 살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 마당을 버리면 이웃은 흉악한 사람들이라 생각하여 지문인식이나 눈빛으로 현관문을 열고 닫기 때문에 더 더욱 고독한 세상이 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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