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친구
[세상의 자막들] 친구
  • 임영석
  • 승인 2019.07.07 04: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임영석<시인>
△ 임영석<시인>

세상을 살아오며 뒤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살아온 듯하다. 초등학교 친구, 중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 30년 직장을 다니며 만난 친구, 그리고 40여 년 글을 쓰며 만난 글 친구들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정작 가슴속에 담아둔 친구 하나가 없다. 아니 많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가슴에 담아두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지금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친구가 나 하나뿐이다. 왜 그렇게 야박하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스스로가 남에게 의탁하거나 부탁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땀으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면 나 자신도 부정해온 습관 때문에 고립을 자초했는지도 모른다. 40여 년 글을 쓰며 시집을 낼 때마다 많은 사람들에게 시집도 보내고 년 말에 안부도 묻고 일상을 살아간다.

내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만 해도 천 명은 될 것이다. 매일 같이 시 메일을 수 백 명에게 보낸다. 그러니 며칠만 두문불출하면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내 친구가 없다고 말한다. 수천 명의 사람을 알고 지내고 있지만 공적(公的)인 관계의 사이이지 친구의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친구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수십 명이 있다. 그런데도 나는 참된 친구라 말하지 않는다. 내가 그 친구들에게 내 목숨을 내어 줄 만큼 사랑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매일 나를 바라보듯 나를 대하듯 마음을 담아 친구를 생각할 여력이 없고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는 내 친구가 없다고 말한다.

민병도 시인의 시 「오직 한 사람」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꽃이 / 내 것일 필요는 없다 // 세상 모든 사람이 / 다 내편일 필요도 없다 // 눈 감고 / 서로를 보는 / 너 하나도 너무 많다〉

많은 친구를 둔다는 것은 빚을 지는 일이다. 그 친구를 목숨으로 지켜낼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진정한 친구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내 목숨을 내어줄 만큼 사랑을 줄 수 없어 친구가 없다고 말한다. 친구가 없다는 내 말속에는 내가 내 목숨을 내어줄 만큼 용기가 없다는 뜻이다. 말로만 가식적으로 친구라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가 없음에도 난 외롭지가 않다. 정말 내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민병도 시인의 시 「오직 한 사람」에서 읽어본 바와 같이 세상의 모든 꽃이 내 것일 수도 없고, 내 것일 필요가 없다. 내 가슴속에 내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삶의 꽃이 내 심장에 피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친구로 나를 선택해 나와 대화하고 나와 이야기하고 나와 삶의 여행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친구를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 흐르는 물이 맑아지려면 물이 흐르면서 흘러가는 모든 것을 씻어내야 맑은 물이 뒤를 이어 흐를 수 있다.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친구도 내 마음속의 물처럼 생각해야 한다. 좋은 친구는 내 마음의 흙탕물을 다 씻어 줄 것이고, 그 흙탕물을 씻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는 친구는 떠나갈 것이다. 정말로 내 가슴의 흙탕물을 거두어낼 친구가 있는가 생각하면, 없다는 생각이다. 좋은 친구를 만들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가장 좋은 친구로 만들고 스스로의 삶에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 나의 가장 좋은 친구 나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중이다. 외롭지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