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이름, 너는 내 운명”
〔비로봉에서〕 “이름, 너는 내 운명”
  • 심규정
  • 승인 2019.07.07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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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발행인·편집인)
△심규정(발행인·편집인)

나 만큼 이름에 관한 임펙트 있는 에피소드가 많은 사람이 있을까. 얼마전 한 커피숍에서 수다를 떠는 아줌마들로부터 전해들은 말이 아직도 나의 뇌리 한 귀퉁이에 철썩 붙어있다. “아 글쎄, 규정, 규정, 왜 규정만 강조하는지”. 어떤 사례를 거론하며 융통성 없는 행태에 직격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규정(規定)규칙으로 정한다란 뜻이다. 내 이름은 곧은 것을 헤아린다라는 뜻의 규정(揆貞)이므로 의미는 다르지만, 설핏 비슷하게도 들린다. 한자를 잘 사용하지 않는 요즘 같은 세상에 내 이름을 거론되는 것을 자주 접하다 보면 긍정과 부정의 생각이 교차한다. 과거 일간지 법조 출입기자 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규정에 의하여”, “규정에 따라” ,“규정했다등등. 법원 판결문은 물론 행정기관의 공문, 사기업 공문에도 내 이름은 보무도 당당하게 등장한다. 그 때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이름이 너무 사무적이고 딱딱해”, “사고의 유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고집불통의 인간으로 비춰지고 있어...” 한가경 미즈아가행복작명연구원장은 한 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름이란 평생을 함께하며 앞날을 윤택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인생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신생아 이름이건 상호 작명이건 타고난 자신의 몸, 자신의 체질, 자신의 외모, 자신의 성품과 잘 어울리고 자신의 사주와 운명을 보완해주는 이름이 좋은 이름이다라고.

요즘 나를 껄끄럽게 생각하는 사람, 태평양 같이 먼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나를 품평하는 말을 지인들을 통해 자주 전해 듣는다. ‘냉혈한(冷血漢)’, ‘앞뒤로 꽉 막힌 00’란 말에서는 절로 피식 웃음이 번진다. 그러나 저 놈 피는 차가울 거야’, ‘시베리아 벌판 같은 놈이런 악평을 들을 때는 모골이 섬뜩해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이런 노골적인 비아냥이 나오는 것은 아마 너무 원칙을 강조하고 타협을 할 줄 모르는 성격 탓 일게다. 그래서 스스로를 되돌아 본다. “내가 변해야 할까”, “나에게 진짜 문제가 있는 걸까”, “함께 사는 세상인데...이런 생각에 고민의 깊이가 더해진다. 이 대목에서 집사람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이 떠오른다. “남자가 눈물이 왜 그렇게 많은지...”. 잔잔한 가족애를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가족들에게 들킬까봐 몰래 눈물을 훔치자, 옆에 있던 집사람이 핀잔을 줬던 것. 집사람과 딸 아이는 깔깔대며 가볍게 넘겼지만, 나의 이런 모습에 집사람의 말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다.

부모님이 물려 주신 이름 석자는 운명이고 필연이다. 내가 걷는 길이 바른 길이고,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 내 직업이 사회를 밝게 비추는 탐조등 역할이니 만큼 그냥 내 스타일 대로 살면되지라고 되뇌고 또 되뇐다. 골수에 박힌 DNA는 누가 뭐라 한들 고치기 힘들다. 억지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거나 말과 행동이 생각과 어깃장이 나게 되면, 인생행로는 헝클어질 수 밖에 없고, 결국 고통스런 삶이 될 수 있다. ‘트럼프, 거래의 기술이란 책에 이런 글귀가 있다. “좋은 평판은 나쁜 평판보다 낫다. 그러나 나쁜 평판은 평판이 전혀 없는 것보다 낫다”. 순간의 어떤 평판보다 내 성향이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쳐 주위에 어떻게 장기적인 평판을 받게 되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내 이름석자 평가는 훗날의 일이다. “이름이 좋아 불로초라라는 속담은 불로초는 이름도 좋지만, 약효도 좋아 불로초라 이른다는 뜻이다. 내용에 걸맞게 이름을 지은 경우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내가 잘났다는 게 아니다. 그냥, 규정답게 살겠다. “내가 없어도 너는 계속 남으니...그 이름! 먹칠하지 않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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