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살며 사랑하며]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 임길자
  • 승인 2019.10.06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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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세상이 때로는 각박하고 냉정하다고들 말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곳곳을 이끌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고 보는 맹자의 성선설에 가깝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행위를 당연한 도리로 여기는 것이다.

지난 주 토요일 아침의 일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오늘 그쪽 시설에 자원봉사를 가려고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더니 담당직원이 쉬는 날이라서 여러분들이 단체로 오시는 봉사는 곤란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시설을 도와주기위해 가겠다는 것인데 담당자가 없다고 거절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사실 단체 자원봉사자들은 사전에 시설과 협의를 하는 것이 보통의 예이다.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시설에 아무 때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것은 다른 부작용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직원들도 주말은 좀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 모를 자원봉사자들 방문을 위해 불철주야 대기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설장으로서 미안했다. 왜냐하면 전화를 받은 직원이 그 분의 마음을 조금만 더 성숙하게 읽어드렸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 분은 좋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자신들은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좋은 마음을 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틀린 말 아니다. 사실 좋은 생각이다. 다만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마음의 결이 서로 좀 달랐을 뿐이다.

지금 당장 배가 고픈 사람에게 비싸고 화려한 옷을 선물하는 것, 위장병에 걸려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셰프가 차린 밥상 제공한 것,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베스트셀러라며 책을 사 주는 행위 등 아무리 좋은 선행일지라도 상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아니면 그냥 접어야 한다. ‘좋은 의도로 도우려 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다.

옛날, 혈혈단신인 한 노인이 깊은 산중에 살고 있었다. 그는 가족도 친구도 없어 늘 외로웠다. 그러던 중 곰과 친구가 되어 둘은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어느 화창한 날 그들은 함께 등산을 갔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곰을 능가하랴. 산을 조금밖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노인은 너무도 힘이 들었다. 곰은 노인이 멀리 뒤쳐져 오는 것을 보고 멈춰 서서 말했다.

앉아서 좀 쉬든지 아니면 나무에 기대서 낮잠을 좀 주무세요.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우시면 제가 곁에서 지켜 드릴께요.” 노인은 감동 어린 눈으로 곰을 바라본 뒤 큰 나무에 기댄 채 잠깐 눈을 붙였고, 곰은 충직하게 곁에서 노인을 지켰다.

그때, 갑자기 파리 한 마리가 노인의 머리 위를 맴돌다 노인의 콧잔등에 앉았다. 곰은 재빨리 파리를 쫓았는데, 잠시 후 파리는 또 날아와 노인의 얼굴에 앉았다. 곰은 노인의 단잠을 깨우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자신의 큰 손바닥을 들어 숨죽인 채 쭈그리고 앉아 생각했다.

이 못된 파리, 내 기필코 혼내주고 말 테다.’ 파리가 다시 노인의 볼에 내려앉자 곰은 위치를 잘 조준해 있는 힘껏 손바닥을 내리쳤다. 그 힘에 못 이겨 파리는 죽었지만 노인의 두개골 역시 두 쪽으로 갈라져버렸다. 노인은 비명 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다.

남을 돕더라도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고민해보고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 뒤에 필요한 도움을 줄 때 그것이 진정한 도움이고 봉사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을 돕는 것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무조건 도와주면 상대방이 고마워 할 것이라는 생각은 일그러진 교만이고 집착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련이 닥쳐도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때 그를 돕겠다고 무언가를 내밀면 자칫 동정으로 오해받게 될 것이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 분야의 기술과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의 도움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면 꼭 필요한 도움을 모자라지도 않게, 넘치지도 않게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봉사는 주기만 하는 것이고 생각한다. 물건을 내어 주고, 금전을 나눠 주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 행동하는 것은 모두 봉사정신으로 무장된 행위이므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자신의 행위를 상()으로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사실 봉사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는 가장 쉬운 행위이다. 조금만 마음을 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조금만 살피면 곳곳이 봉사터널이다.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뿌릴 때에 자기에게도 몇 방울정도는 묻기 때문이다. -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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