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언어의 정수(精髓), 언어의 창(槍)
[살며 사랑하며] 언어의 정수(精髓), 언어의 창(槍)
  • 임길자
  • 승인 2019.11.03 2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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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오〇〇님은 한 동안 야간 배회로 함께 생활하는 어르신들을 많이 힘들게 했다. 간호담당자가 어르신을 좀 진정시키기 위한 방책으로 며느리와 전화 통화를 도와드렸다. 한 시간쯤 후 근래 감기몸살이 심해서 고생을 했다는 며느리가 찾아왔다. 오〇〇님은 며느리를 보자마자 화를 벌컥 냈다. 입에 담기 어려운 험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말없이 듣고 있더니 어르신을 모시고 공원으로 나갔다. 바람이 좀 찬지라 걱정이 되어 담요를 가지고 뒤따라 나갔다. 어르신은 며느리를 향한 거친 말씀을 멈추지 않았다.

어르신의 말씀을 요약해보면

“내가 젊어서 보따리 장사를 해서 내 아들․딸들을 남부끄럽지 않게 키워 놓았는데 어쩌자고 나를 이런 낯선 곳에 버렸냐? 내 아들이 너를 만나 나쁜 놈이 되었으니 물어내. 천안에 내가 가진 땅이 여러 필지가 있는데 그건 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여기서 나가야 해결을 할 것 아니야! 여기서 날 내보내 주지 않으니 경찰 불러!……” 등등

얼마 전엔 어르신을 케어하는 직원에게 당신 방에 있는 침대를 당신도 모르게 팔아먹었다고 역정을 내시는 것을 다른 직원이 돈(복사해서 만든 가짜 돈)을 챙겨드리며 “침대가 낡아서 팔았습니다. 판돈은 여기 있습니다. 나중에 좋은 침대가 오면 그때 다시 사시면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순간 고요해 졌다. 어르신은 당신 기분에 맞지 않으면 수시로 경찰을 불러달라고 하거나 천안을 가야 한다고 택시를 불러달라고 하신다. 어르신은 현재 자발적 걷기는 곤란한 상태이므로 활동의 대부분은 휠체어를 이용하시는데, 그날은 어르신이 타고 있는 휠체어를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 며느리에게 있었으니 오만가지 불편한 언어들은 고스란히 며느리를 향하고 있었다.

그(며느리)는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할머님 손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의 할머님은 성품이 곱고 침착한 분으로 어려운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손녀딸을 키워주셨다고 한다. 스물한 살에 직장에서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삼남매를 낳아 서울에서 단란하게 살고 있었는데 시아버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이 시댁이 있는 천안으로 내려가 시어머니와 동거를 시작했다. 좋은 마음으로 잘 살고 싶었으나 시어머니는 참는 법을 모르는 분이셨다고 한다. 언제든지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쏟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인데 언어가 너무나 거칠어 늘 무섭고 두려웠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남편과의 갈등이 심해져 결국 분가를 결심하고 원주로 향했다. 일 년쯤 지났을 무렵 천안에서 연락이 왔다. 어르신이 넘어져 고관절이 골절되어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하는 수 없이 며느리는 어머니와 다시 함께 살아야 했다.

어머니는 수시로 맨 발로 집을 나가 동네 경찰 지구대로 가서 며느리를 신고했다. 신고 이유는 “며느리가 나를 내쫓았다. 나 좀 도와줘라. 밥을 안줘서 배가 고파 죽을 것 같다. 찬물에 밥 한술만 말아 줘라…”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을 그녀는 너무 여러 번 경험했다. 치매 어르신을 모시고 사는 가족들 대부분이 유사 경험을 하지만 오〇〇님의 사례는 일반적이지 않은 좀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질병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어느새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그녀는 울면서 말한다. “제발 욕하지 마세요. 어쩌면 그렇게 평생 남을 탓만 하며 사세요. 어머니가 마음 곁을 내 주어야 사람이 곁에 있을 것 아니예요!…” 한(限) 서린 며느리의 절규가 가슴을 시리게 한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런 말은 마음을 닫히게 하고, 거칠고 공격적인 말은 적대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생각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흔들기도 한다. 그러나 상냥한 말은 따뜻한 정을 잉태하기도 하고 힘겨워하는 누군가를 향한 걱정 어린 말 한마디는 그의 삶에 양질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요즘 권력집단이 말하는 법(法)과 원칙(原則)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말에는 온도가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바른 말이 세상을 밝히고, 착한 사람들의 고운 말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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