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사람과 자연의 차이점
[세상의 자막들]사람과 자연의 차이점
  • 임영석
  • 승인 2019.11.17 2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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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시인>
△임영석<시인>

사람은 흉을 보아 등을 돌리게 하고 꽃은 향기를 뱉어 벌과 나비를 불러들인다. 그러니 사람과 자연의 이치가 얼마만큼 큰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되도록 나는 자연을 더 가까이 두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길을 걸을 때도 되도록 혼자 걷고, 숲을 갈 때도 혼자서 자연의 소리를 조용히 지켜보고 온다. 내 마음 안에 나를 흉보고 등 돌리는 벗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흉보는 내가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사람이나 자연이 흉해 보이는 때가 있다. 건강함을 잃고 자기 자신을 지켜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때 자연이나 사람 모두 똑같이 흉해 보인다. 늦가을 나무들이 하루아침에 나뭇잎을 모두 떨어트리는 것을 보며 얼마나 큰 결심을 하였는지를 느낄 수 있다. 한여름 천둥번개 태풍에도 끄떡없이 지켜낸 나뭇잎이지만 무서리 내리는 하늘의 말에 수궁하며 제 나뭇잎을 떨구어 낸다.

욕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 던지지 못하고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리며 오는데
들국화 한 무더기가 발을 붙잡는다
조금만 천천히 가면 안되겠냐고
고난을 참는 것보다
노여움을 참는 게 더 힘든 거라고
은행잎들이 놀란 얼굴로 내려오며 앞을 막는다
욕망을 다스리는 일보다
화를 다스리는 게 더 힘든 거라고
저녁 종소리까지 어떻게 알고 달려오고
낮달이 근심 어린 낯빛으로 가까이 온다
우리도 네 편이라고 지는 게 아니라고

도종환 시 ‘화’ 全文.

도종환 시인은 ‘화’라는 시에서 욕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길을 걸을 때 들국화 한 무더기가 발을 붙잡고 세상 고난을, 노여움을 이겨내라는 하고, 노란 은행잎이 앞을 가로막을 때 욕망을 다스리는 일보다 화를 다스리는 게 더 힘드니 노란 은행잎 떨구어 내듯이 그 허물 다 벗으라고 말하고 있는 듯 들린다. 사람은 화가 나면 싸움을 하거나 상대방을 공격해 화를 내 분풀이를 한다. 자연은 제 열매를 맺어 더 많은 씨앗을 퍼트리는 일로 세상을 살아간다.

아무리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들어도 자연 속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만큼 고귀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귀뚜라미 울음은 그 울음이 절망을 이겨내고 꿈을 만들어 가기 위한 몸부림이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다. 강물이 속으로 조용히 울고 흘러간다고 말한다. 하늘이 더 깊이 어둠을 껴안아 별빛이 빛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모든 표현들이 모두 제 화를 다스리고 살아가는 방법들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이기 위해 참고 이겨내는 일들이 끝없다. 꽃이 꽃이기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시련을 이겨내는지 향기로 말을 할 뿐이다. 사람은 사람이기 위해 인내하고 참고 견디어 내는 일들을 무엇으로 말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를 뒤돌아보면 험악한 말뿐이었다는 것이다. 자연의 말은 아름답기 위해서 제 목숨을 버리는 것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사람은 제 목숨을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부린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파괴한 자연의 모습을 보면 그 참담함을 알 수 있다.

생명주의자나 자연주의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인식이다. 장수하늘소 쇠똥구리 능구렁이가 살아가는 서식지가 무엇이 중요하냐고 말한다. 이것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야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지표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은 화가 나면 스스로 사라지거나 멸종된다. 사람은 분풀이라도 하겠지만, 자연은 제 화를 이겨내는 방법이 없다. 사람의 발자국에서 되도록 멀리 떠나는 것뿐이다. 자연이 스스로를 지켜내는 일은 환경을 보존해주는 것뿐이다.

나무들은 늦가을에 제 나뭇잎을 떨구어 내며 바르게 사는 일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들에게 추풍낙엽(秋風落葉)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떠난다. 자연은 행동을 통해 말을 한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행동을 통해 말하는 법을 익혔으면 한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자신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다. 흉을 보아 돌아서는 벗이 없게 자연을 닮아가며 사는 것도 나이를 먹어가며 배우는 삶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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