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핑계는 실패로 가는 통로이다.
[살며 사랑하며]핑계는 실패로 가는 통로이다.
  • 임길자
  • 승인 2019.12.02 0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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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오랫동안 굶주린 여우 한 마리가 몰래 포도밭에 들어갔다. 아주 탐스럽게 익은 포도는 햇빛을 받아 마치 보석처럼 반짝였다. 여우는 먹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포도가 너무 높아 달려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키를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포도를 따 먹는 일은 불가능했다.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자 여우는 이리저리 맴돌다 결국 포도를 포기하고 돌아서며 “아휴 정말 짜증나네. 저까짓 포도 누가 먹기나 하겠대? 보기에만 맛있어 보일 거야. 먹어보면 분명히 너무 셔서 먹을 수가 없을 거야. 아마 이빨까지 썩어버릴 걸. 차라리 안 먹는 게 나. 차라리 잘된 일이지 뭐”라고 투덜대며 포도밭을 나왔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여우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좌절이나 포기 앞에서 자신이 손에 넣지 못한 것을 최대한 과소평가한다. 이를테면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프로젝트가 틀어져 포기하게 되거나, 승진에서 밀려날 경우 스스로를 위로하며 속으로 이렇게 변명한다.

“오히려 잘된 일이야. 다음에 더 좋은 기회를 노리면 되지 뭐”라거나 “승진한다고 평생 보장받는 것도 아닌데 뭘. 책임질 일만 많아질 테니 지금처럼 평사원으로 홀가분하게 일 하는 게 뱃속 편하지 뭐”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태연한 척하려 하지만, 주변사람들의 평가는 바뀌지 않는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쪽이다. 오히려 그들은 뒤돌아서서 현실 도피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자신도 몹시 불쾌한 감정에서 극복하려는 자기합리화(自己合理化)라는 걸 안다.

우리는 누구나 도전에 실패할 수 있다. 그럼에도 궁색한 변명은 앞으로의 진로를 흐리게 할 뿐이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현실을 직시한다는 건 용기다.

며칠 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서울행에 나섰다. 여의도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을 잠시 스케치해 본다.

광장(廣場)은 ‘도시 속의 개방된 장소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두산백과사전)’라고 설명하고 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권리로 자유롭게 이용되어져야 할 공간이다. 그래서 광장에서의 자유로움은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오늘 본 광장은 그렇지 않았다. 이 나라가 국민을 위한 법이 존재하는 법치국가인가 싶을 만큼 거리는 불편했고 불쾌했다.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건 말건, 다른 사람들이 불쾌해 하건 말건, 주변 사람들의 숱한 민원에도 불구하고 어쩌지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는… 그 시퍼렇던 국가 공권력은 어디로 갔는지?

암혹했던 시절 누군가의 삭발은 ‘숱한 사람들의 자존심’이었고, 피 말리는 단식은 ‘수많은 생명들의 가치’였다. 이 시대 정치인들의 삭발은 보는 이들의 눈을 불편하게 하고, 단식은 착한 국민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듯싶어 속상하다. 사람이 올라가기 힘든 곳에 올라가서 형제복지원의 진상규명과 문제해결을 요구하는 피해자의 몸부림이 가슴을 울렸다.

지근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서로 다른 단식의 형태를 보았다. 자유는 ‘협의와 협조와 타협’이라는 명제가 바탕색이 되었을 때 누릴 수 있는 조건이 된다.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핑계는 자신과 남을 속이는 일이다. 핑계는 현실도피로 자기 자신을 점점 더 소극적으로 만들 뿐이다. 그것은 전염병처럼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며 주변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스스로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이때가 되면 곳곳에선 저마다의 일상을 점검하고 진단하며 주변에 불편하게 사는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나누고 온기를 채워가는 일로 분주해진다. 사는 일상에 빠져 이웃을 살피지 못했던 사람들도 이때가 되면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마무리이거늘 끊임없이 국민을 핑계로 외줄을 타고 있는 뭇 사람들이 안타깝고, 그들을 위해 세금을 모으고 있는 이 나라 국민으로서의 심정이 불편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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