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역사 실을 입구 왼편에 복제된 철조석가여래좌상과 다섯 개의 사진은 여말나초에 제작된 철불 들이다. 우리나라에 흔하지 않은 철불이 원주에 5개가 있다면 당시 원주불교의 위상은 어느 정도였을까? 역사실 입구에서 원주역사연표를 만난다. 연표에 빠진 신라가 원주를 지배할 때 최초지명? 그리고 전시실의 양형청자를 통해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은? 그 옆 석곽묘가 부론 법천리 발굴 7호 실제고분이라는 것을 알면 자연스레 손이 갈 텐데, 1,700여 년 전 선조들 손길과 만나는 느낌은 어떠할까! 역사실 중앙전면에 3개 폐사지의 탑비의 웅장한 탁본이 있다. 역사 실에서 불교유물의 비중이 큰 이유는? 다른 두 개의 탁본은 멀쩡한데 하나는 왜 조각나 있고, 글씨크기는 각기 다른 걸까? 민속실 맞은편의 특별전시실에는 나전장 고 김 봉룡 옹께서 평생 흘린 땀과 노력의 흔적들, 그리고 유작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 통영에서 옮겨와 돌아가실 때까지 원주에서 작업한 이유는? 이제 전시실을 나와 박물관 뒤편으로 가보자. 곳곳에 석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많은 석물들은 어디 있던 것들일까? 1900년 초 일본인 유물조사담당자가 본국에 보낸 전문에서 “원주불교유물을 조사하고 나니 경주사람이 와서 보고 맨발로 도망갈 지경”이라고 했다면 도대체 원주불교 유물이 어느 정도였기에? 전통한옥이 최규하 대통령이 어릴 적 사시 던 유허지로 전형적인 중부내륙의 양반가 한옥형태를 재현한 건축물이지만 왠지 좀 균형감에서 어색함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박물관 경내·외에 석조불상이 5개다 그 불상들의 공통점을 무엇일까? 이렇게 조금 시간을 가지고 전시물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궁금해지고 관심을 끌 것이다.
우리박물관에 더 많은 관람객이 붐비게 하려면 좀 더 흥미를 자극하고 즐거움을 줘야한다. 문화유산에 대한 기본 개념과 궁금해질 만큼의 힌트를 제공하고, 그 이상은 공부하고 싶도록 자극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박물관이 관람객들에게 그렇게 이해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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